"최근 기업 직원들의 단체회식이나 가족 단위 외식이 줄어 매출이 평소보다 25%나 줄었고 원재료 가격의 상승으로 얼마 전 음식 가격을 10% 가량 인상했습니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은 다들 알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인 산호(San Ho)의 매니저인 레 쿽 중(33)씨의 얘기다.

해외에서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설을 비롯한 경제위기설이 들끓고 있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고성장을 구가하던 베트남 경제의 발목을 잡은 인플레이션을 현지인들이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께로 불과 2개월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즐겨먹는 쌀국수 가격이 하노이 거리에서 한 그릇에 7천~8천동(440~500원)하던 것이 최근 1만동(630원)으로 30~40% 가량 오르면서 비로소 물가가 오르는 것을 체감하고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경제난 징후 곳곳에서 나타나 = 무역적자 확대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인한 경제난의 징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부가 고시하는 동화 환율은 달러당 1만6천200동이지만 암달러 시장에서 2개월 전 달러당 1만5천400동이던 환율이 현재는 1만8천동까지 뛰어오른 상태다.

이처럼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공항 면세점에서조차 자국 통화인 동화를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하노이공항에 입점한 한 초콜릿 가게에서는 카운터 뒤편에 아예 '당분간 동화는 받지 않는다(Please note that VND is temporarily unaccepted)'는 안내문을 걸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으며, 인근 토산품 가게에서는 동화로 결제하되 정부고시 환율로 계산했을 때보다 30% 가량 높은 가격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 쌀값이 급등하면서 일부에서 쌀 사재기가 발생하자 정부에서 단속에 나서기도 했으며, 한 외국계 회사에서는 임금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불만을 품은 베트남 노동자들이 전례 없이 파업을 하기도 했다.

또 눈덩이처럼 불어난 무역수지 적자를 억제하기 위해 당국에서 관세를 높이는 한편 수입업체들의 신용장(L/C) 개설을 통제하면서 수입 업무는 거의 중단된 상태다.

당초 5%였던 신용장 개설 담보비율을 2개월 만에 100%로 높임으로써 수입 관련 신용 대출이 아예 막혀버린 것.
이로 인해 기계부품, 철강, 정유 등 산업재의 품귀 현상까지 우려되고 있다.

베트남에서 철강 수출업을 하고 있는 쌍용의 유치훈 하노이지사장은 "무역적자 폭을 줄기 위한 극약처방을 한 셈인데 정도가 지나치다.

이러다 3~4개월 뒤 재고가 바닥나고 나면 물품 품귀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칫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 정부에서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 금융.부동산시장 불안 가중 = 금융시장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호찌민증권거래소의 VN지수는 지난주 400선이 무너진 데 이어 6일까지 22거래일 연속 추락하며 10월 고점 대비 65% 이상의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호찌민증권거래소의 지난달 주식 거래량은 하루 평균 800만달러로 작년 10월 5천200만달러의 7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하노이증권거래소는 같은 기간 3천만달러에서 300만달러로 10분의1로 줄었다.

거래량이 줄면서 수익이 급감한 현지 증권사들은 부도 위기설 속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고강도 긴축정책 여파로 남부 호찌민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불과 2~3개월 만에 20~40% 급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도 급랭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리 상승이 지속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붕괴될 경우 경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 현지 위기 체감도는 낮아 =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베트남 내부에서는 물가 상승 외에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현지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하노이에 진출한 한국 부동산개발업체인 미디어윌의 데이비드 박 베트남본부장은 "현지인들이 위기감을 못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물가 상승 등 경제 상의 변화를 체감한 것이 불과 2개월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경제난은 이제 막 시작 국면으로 시간이 갈수록 영향이 서민 생활과 경제 전반으로 점차 확산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베트남은 1986년 말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모이(Doi Moi)'를 채택한 이후 쉼없는 경제발전을 지속해왔으며, 특히 최근 10년 동안 연 평균 7.6%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빠른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뿐만 아니라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동화 가치가 급상승하고 고가의 소비재 수입이 급증하는 가운데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금이 흘러드는 등 호황을 구가했다.

경제난에도 베트남 정부 당국이 내놓는 경제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베트남 증권감독위원회(SSC)의 응우엔 도안 흥 부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경제난이 해결되고 내년 초부터는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모든 경제 문제를 올 연말까지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 단기 회복 힘들어도 잠재력 여전 = 베트남은 개방 이후 지금과 같은 경제난을 처음 경험해 보는 데다 시장경제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았고 정부의 정책운용 경험도 충분치 않아 경제위기를 단기간 내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현지 경제 전문가와 업계의 반응이다.

베트남 최대 국책은행인 비엣콤뱅크의 응우엔 반 뚜안 부행장은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경제난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진 지속될 것으로 본다.

회복된다면 2010년부터나 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어려움을 잘 해결하면 좋은 투자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쌍용의 유치훈 하노이지사장도 "장기적으로 보면 베트남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있다.

더 곪기 전에 한번 터지는 것이 오히려 베트남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기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만큼 경제위기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호찌민 소재 외국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레 뒤 항(30)씨는 "개인적으로 베트남 주식에 투자해 현재 60%가 넘는 손실을 보고 있지만 주식을 팔 생각은 없다.

늦어도 2~3년 후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변의 동료들 중에도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최근 손실이 커진 것은 안타깝지만 과거 몇 년 간을 돌아보면 오를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노이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