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디스플레이용 집적회로를 납품하는 D사는 최근 골치아픈 일을 겪었다.

일부 소수주주들이 '현 이사들의 해임'과 '이사 6인 추가선임'을 목적으로 하는 '임시주주총회 소집허가' 신청을 법원에 냈기 때문.이 회사는 서둘러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대응에 나서 법원의 기각결정을 받아냈지만 '경영권 방어'에 반년가량 매진하느라 경영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어이없었던 것은 신청인들이 알고보니 상법 제366조가 규정하고 있는 '주총소집허가 신청 소수주주 자격요건'인 3%의 주식도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 사건을 담당했던 법무법인 한승의 임정수 변호사는 "신청인들은 D사의 경영진을 바꿔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려고 임시주총 소집허가 신청을 냈으나 상황이 뜻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자 주식을 처분했다"며 "조사결과 주식을 0.5%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기에 망정이지 자격없는 주가조작 세력에 의해 회사가 농락당할 뻔했다"고 말했다.

최근 경영진 교체나 경영권 위협을 위한 '임시주총소집허가' 신청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 경영진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2008년 6월 현재까지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온 '임시주총소집허가' 신청은 27건.이는 작년 한 해 동안 법원에 접수된 건수와 같은 수치다.

법원까지 오지 않은 주총소집 요구를 합하면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주총소집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황당한 주총소집 요구 사례는 다양하다.

무선인터넷 콘텐츠 전문기업인 Y사의 경우 소수주주들은 회사 측이 같은 목적으로 주총을 열어주겠다는 요청에도 불구,이를 무시하고 법원에 주총소집허가 신청을 내 서로 법률공방을 벌여야 했다.

소수주주 측은 주총에 제기된 안건의 순서가 자신들이 원하는 순서와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소수주주들이 법원의 권위를 빌어 '회사가 얼마나 잘못하면 법원에서 이런 결정이 나오겠느냐'고 다른 주주들을 설득하려는 의도로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각결정을 내렸다.

S건설은 이미 이사가 새로 선임됐는데 똑같은 내용의 주총을 소집할 것을 소수주주들이 요구해 진땀을 뺐다.

이 회사 관계자는 "경영진에 불만을 표시하고 회사를 흔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총소집 요구는 주로 중소기업에 집중된다.

주총소집 요구 자격요건인 3% 이상의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선 중소기업이 쉽기 때문.소집 목적이 이사해임 등 경영진 교체 요구가 대부분이라 일단 신청이 들어오면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전력을 다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또 일단 분쟁이 벌어지면 다른 주주들까지 동요할 수 있어 주주들의 현 경영진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등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법원은 소수주주들의 정당한 권리보호를 위한 주총소집 요구 이외에 다른 목적의 신청에 대해서는 판단을 엄격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법의 홍준호 판사는 "최근 추세를 보면 경영권을 위협하기 위해 신청권을 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법원은 신청권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주총소집 목적이 적합한지 여부 등을 엄격히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