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나흘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08)에는 전 세계 3만여명의 암 치료 의사들이 모여 그동안 개발된 신개념 항암제의 효과를 점검했다.

'항암제 박람회'와 다름없는 이 행사에선 신개념 항암제 중에서도 다중표적 치료제를 중심으로 한 최신 암 치료 동향이 집중 소개됐다.



◆넥사바,간암 환자 생존율 47% 연장

바이엘의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는 한국 대만 중국의 간암 환자 226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에서 위약(가짜약)에 비해 생존율을 47% 높인 것으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위약을 복용한 사람은 생존기간 중앙값(복용자의 50%가 살아남았을 때 전체 참여자의 복용 시점 이후 평균 생존기간)이 4.2개월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넥사바는 6.5개월에 달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안리 쳉 대만대학병원 교수는 "2007년에 미국 유럽 대양주의 간암 환자 602명을 대상으로 넥사바를 투여한 과거 연구와 비교할 때 생존율은 3%포인트 높아졌다"며 "그렇지만 생존기간 중앙값은 위약이 7.9개월,넥사바가 10.7개월로 절대적인 생존기간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아시아 환자가 B형 간염에 의한 간암 환자 비율이 높아 간암의 악성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서구의 간암 환자는 알코올 또는 C형 간염에 의한 간암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강윤구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간암이 초기이거나 특정 부위에만 있다면 수술이나 고주파열치료를 시행하고 암이 간 여러 곳에 퍼져 있으면 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간동맥을 막아버리는 색전술로 치료해 왔으나 말기 간암이나 여러 장기로 전이된 간암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며 "넥사바는 이런 환자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넥사바가 가장 먼저 개발된 간암에 관련한 다중표적치료제이기 때문에 사실상 세계 표준"이라며 "이보다 늦게 개발된 화이자의 '수텐'(수니티닙) 등은 넥사바를 기준으로 비교 임상시험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얼비툭스,KRAS정상형인 대장암에 효과 좋아

에릭 반 쿠쳄 벨기에 개스츄스버그 대학병원 소화기종양내과 교수는 전 세계 540명의 전이성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폴피리요법(폴린산+5플루오로우라실+이리노테칸 병용)에 머크의 '얼비툭스'(세툭시맙)를 병용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한 결과 반응률(종양이 줄어든 비율을 3가지 관점에서 통계 처리)이 59.3%로 폴피리요법만 한 경우의 43.2%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대장암의 바이오마커(지표단백질)인 KRAS가 정상형일 때 이 요법을 쓰면 종양이 성장하지 않은 채 생존하는 기간이 이리노테칸만 단독 투여할 때보다 1년 더 연장되는 것으로 타나났다.

얼비툭스는 세포의 증식과 분화 등에 관여하는 복잡한 신호 전달체계의 첫 단추인 EGFR(표피성장인자수용체)를 억제하는 단일클론항체 항암제이며 KRAS는 이 과정에서 종양의 생존,혈관 신생(암세포가 증식하기 위해 정상 조직으로 혈관을 뻗어내는 것),증식,전이에 관여하는 중요한 바이오마커다.

머크사는 대장암 환자의 25%가 다른 장기에 암이 퍼진 전이성이며 이들의 5년 생존율은 5%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이번 연구 결과는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대장암 환자 중 KRAS가 정상형인 사람은 64%,돌연변이형은 36%로 앞으로는 정상형인 대장암 환자에게만 선별 투여함으로써 치료성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수텐,신장암에선 최초로 2년 이상 생존 가능

화이자의 '수텐'(수니티닙)은 전이성 신장암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생존기간 중앙값이 26.4개월로 인터페론-알파(IFN-α)를 복용한 그룹의 21.8개월보다 길었다.

반응률에서도 수텐은 47%로 IFN-α의 12%보다 높았다.

정현철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전이성 신장암에서 생존기간이 2년을 넘긴 항암제는 수텐이 처음으로 암 치료에 중요한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시카고=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