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열심히 해도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혈기 왕성한 한 사업가의 하소연이다. 끈기와 노력도 좋지만, 안 될 땐 돌아서야할 때도 있다.
안되면서도 계속 밀어붙이는 이유는 거개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다. 엄청난 수고가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일본의 유명한 도자기 감정가 스즈키의 금기가 하나 있다. 감정을 의회한 작품에 대해 소장박물관이나 소장자를 밝히면 절대 작품을 감정하지 않는 것. ‘누가 소장하고 있다, 어디서 소장하고 있다’란 말에 선입견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의 감정방법은 오로지 현품대조(現品對照). 정보를 더 얻어들으려하고 쌓아놓은 것을 활용할 생각부터 하는 자세와 사뭇 다르다.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 순수해야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기에 그는 일본 최고의 감정가로서의 명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순수한 마음. 그것이 초심(初心)입니다.
만약 살면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슬럼프라고 생각한다면 제일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 마음에 번뇌가 있다고 생각되면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명예, 부, 명성, 인기, 체면, 직위 등에 절대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항상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격문이 있다.
초발심시변정각 백척간두진일보
(初發心時便正覺 百尺竿頭進一步)
‘초발심시변정각’은 처음 발한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며, ‘백척간두진일보’는 백 척의 까마득한 절벽에서 한 발을 내딛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삶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심의 절실한 마음을 잃지 말고 스스로 극한 상태에 처하게 하여 긴장하도록 해야 한다. 잡고 놓지 않으려는 집념보다 한 순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더 어렵다는 의미다.
초심을 지키기란 참 어렵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초심을 잊고 만다. 그러면서 초심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만절(晩節)을 보면 초심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만절이란 ‘오랜 절개’로 이 말은 평생을 잘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맨 마지막 행동까지 지켜봐야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36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어도 마지막 순간에 친일을 했다면 친일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남 보기에 친일을 했어도 끝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 사람의 초심은 독립운동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맨 마지막 절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선 말 김홍집 내각은 친일 행각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으며, 명성황후 시해 사건 직후에는 민심을 잃고 만다.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붕괴되고 친러 정권이 들어서자 그의 죽음은 불 보듯 뻔했다.
바로 그때, 일본 군대는 그에게 밀사를 보내 만약 일본 진영으로 몸을 피신한다면 자신들이 책임지고 김홍집을 보호하겠다고 약조한다. 그러나 김홍집은 이를 단칼에 거부하며 말했다.
“내가 일본과 가까이 지낸 것은 조국의 개화를 위해서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다. 맞아죽는다 해도 내 나라 백성의 손에 죽어 내 초심을 알리겠다. 그것이 떳떳한 죽음이다.”
1896년 김홍집은 광화문 앞에서 성난 백성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기에 매국의 오명을 벗고,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초심을 지키면 흔들리지 않는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매 순간 자신을 진화시킬 수 있다.
인생의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라. 처음 먹었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일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슬럼프에서 헤어나려면 수렁에서 싸우지 말고 슬럼프를 되돌아 떠나라. 그 용기가 초심이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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