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소원이나 내볼까?"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민변 등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면서 헌법소원이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헌법소원은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고 판단한 국민이 변호사를 통해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하지만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한 엉터리 소원 접수가 줄을 잇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헌재가 접수한 헌소는 총 1770여건.2001년 1000건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 추세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이명박 특검법 등 민감한 정치 사건에서부터 '서울말을 표준어로 쓰지 말자' 등 황당한 헌소까지.하루 평균 5건꼴이다.

청구인의 범위도 다양해졌다.

한 사법시험 준비생은 자신의 글씨 속도가 느리고 악필인 것이 불만이었다.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이 수험생은 2차 시험시간이 짧은 것이 불리하다며 지난해 헌소를 제기했다.

시험시간이 글씨 속도가 느린 사람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주장의 논리였다.

입대를 앞둔 20대 청년도 특이한 헌소를 냈다.

그는 훈련소 생활 중 공중전화를 쓸 수 없는 점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공중전화 사용은 군인이 훈련소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초훈련과 관계가 없는데도 이를 통제하는 것은 헌법상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역설했다.

종교인도 헌소 대열에 합세했다.

천주교인과 불교 신자 등 3명은 투표를 하러 교회에 가야 하는 일이 자신의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며 올초 헌법소원을 냈다.

상식을 뒤집는 헌소도 있다.

왜 서울말이 표준어가 돼야 하느냐는 헌소다.

서울말로만 교과서를 만들고 공문서를 작성토록 한 것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평등권에 반한다는 내용이다.

'전국이륜문화개선운동본부'라는 동호회의 회장은 오토바이 등 이륜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운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소를 냈다.

이 청구인은 지난해 4월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해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헌재는 이 같은 내용을 규정한 도로교통법 제58조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양한 헌소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문턱이 낮아져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며 일단은 반기는 분위기다.
헌재의 김복기 공보관은 "얼핏 황당해 보이는 헌소도 청구인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예전엔 국민들이 국가를 두려워해 스스로 포기했던 사안도 이제는 '국가를 상대로 다퉈볼 만하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등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우려의 시각도 있다.

"무조건 내고 보자"는 식의 헌소도 덩달아 늘고 있어 업무 폭주의 문제점 등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재판관 9인으로 이뤄진 전원재판부 심리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3인 지정재판부의 사전 심사 과정에서 각하되는 비율이 전체 각하 사건의 90%가량일 정도다.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면 반드시 변호사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른바 변호사 강제주의다.

그런데도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이유가 뭘까.

헌재 연구관을 지낸 한 고등법원 판사는 "비용문제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헌소 제기에는 인지대가 들지 않는다.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국가에서 국선 변호인을 지원해준다.

헌법소원의 내용이나 형식에는 관심없는 국선 변호인이 대리하다 보니 사전에 걸러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기본권 문제 해결을 모두 헌재에 의지하려는 왜곡된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헌재 만능주의' 확산을 탓하기도 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