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품이 나오면 단골고객에게 잘 어울릴 것이란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그 고객에게 연락하면 영락없이 만족해 합니다.

숍매니저 생활 20년 만에 반(半)점쟁이가 됐나 봅니다."

현대백화점 본점 3층의 디자이너 브랜드 '제이알'의 김혜숙 매니저(51)와 '미스박'의 조금희 매니저(49).파리목숨이 되기 십상인 백화점 숍매니저 생활을 20년간 해온 비결을 묻자 이렇게 에둘러 설명했다.

김혜숙 매니저는 제이알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2년 일하다 숍매니저를 시작했고,조금희 매니저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 매니저로 6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숍매니저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본사에 제대로 전달해 고객과 디자이너 간의 갭을 좁혀주는 '메신저'다. 그 때문에 백화점에서 한 브랜드로 10년 이상 매장을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트렌드가 급변하는 패션매장에선 조금이라도 처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매장을 빼야 한다.

이때 브랜드 수명은 고객들과 브랜드를 직접 이어주는 숍매니저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매니저는 "자기 색이 분명한 수입 명품과 달리 유행에 민감한 국내 브랜드는 고객들이 빨리 싫증을 내는 편"이라며 "옆에서 잘 팔린다 싶으면 그대로 카피한 비슷비슷한 옷들이 급증하면서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조 매니저는 "얼마 전 한 고객이 10년 전에 구입한 옷을 가지고 무늬가 닳았으니 환불해 달라고 찾아왔는데 처음엔 황당했지만 10년 동안 우리 브랜드 옷을 잘 입고 있다는 데 감사함을 느껴 새 옷으로 교환해준 적이 있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는 "한 벌로 10년 이상 입을 수 있는 옷을 팔아야 한다"며 "유행에 휩쓸리거나 매출에 연연해하기보다는 한 벌이라도 끝까지 '수선'서비스해 준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는 까다롭고 보수적인 강남 고객들을 20년지기 단골로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김 매니저는 "고객들 사이에서도 '2080 법칙'이 나타난다"며 "소수의 단골손님이 주변 친구들과 함께 와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일주일에 2~3번씩 편하게 들러 친구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옷을 사가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조 매니저는 "강산이 두 번 변한 기간에 한자리를 지킨 만큼 이제는 '반 점쟁이'가 된 것 같다"며 "신상품이 나오면 어떤 고객이 좋아할지 딱 떠오른다"고 말했다.반대로 매장을 찾는 고객의 얼굴만 봐도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지 척척 맞힌다고.

두 사람은 "엄마가 입었던 옷이 예뻤다면서 세월이 흘러 나이 든 딸이 찾는 경우도 많다"며 "이럴 때마다 쌓아온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은 어떤 명품 수입 브랜드 못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