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이 불명예 퇴진한지 한 달 만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단독후보로 복권됐다.

박 전 행장은 9일 전화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면서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최후 보루인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보험 카드 은행에 이어 국민연금까지 중책을 맡게 됐는데.

"솔직히 지난달 우리은행장으로 재신임될 줄 알았다.

우리은행의 자산건전성이나 영업실적을 볼 때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런데 불신임 결정을 받았다.

충격이었다.

하지만 새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위한 중책을 맡기기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것 아닌가 싶다.

새 정부로부터 불신임을 받고도 재기용된 첫 번째 케이스다.

국민연금은 서울보증보험이나 LG카드 우리은행 등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조직이다.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아닌가.

정부로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더 절박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본다."

-'불도저식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통한다. 국민연금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1998년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갈 당시 보증한 기업의 부도 규모가 20조원이었다.

아무도 사장으로 가려고 하질 않았다.

LG카드는 사외이사를 선정하지 못해 이사회 구성조차 못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투입돼 쓴소리 한번 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정상화시켰다.

일부에서는 나를 두고 무자비하게 사람만 자르는 구조조정의 달인이라고 평가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은행에서도 사람을 줄이지 않았다.

경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시스템을 개혁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조직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

내가 사람을 자르지는 않지만 편안히 놀고 먹는 것은 봐주지 않는다."

-기금 운용에도 관여할 생각인가.

"물론이다.

지난 34년간 금융기관에 종사하면서 전문성을 갖췄다고 자평한다.

정부가 이사장에 내정한 것도 기금운용을 포함한 전체를 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국민연금 최고책임자로서 기금운용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박 전 행장의 임명 제청과 관련,"기금운용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기금 적립액은 4월 말 현재 232조원으로 2010년에는 330조원,2020년에는 900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은 최근 수년간 연 5.6~8.1%에 불과,미국의 공적연금인 캘퍼스 등 외국 연기금은 물론 국내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보다도 현저하게 낮은 수치에 머물렀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연 1%포인트 높아지면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2.2%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장 때보다 연봉이 많이 줄었는데.

"서울보증보험 사장 시절 연봉이 7600만원이었다.

누가 한 달에 380만원 받고 20조원이 부도난 회사에 사장으로 일하겠느냐.LG카드 사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과 비교하면 연봉이 10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남들은 10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번 줄 알지만 사실과 다르다.

무엇보다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명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박해춘 내정자 프로필

△1948년 충남 금산 △대전고·연세대 수학과·고려대 경영대학원 △삼성화재 기획 및 마케팅담당 이사 △서울보증보험 대표 △LG카드 대표 △우리은행장 △한국 보험계리인회 회장

이심기/류시훈 기자 sglee@hankyum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