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홍보실은 9일 빗발 치는 기자들의 전화로 홍역을 치렀다.

오전 중 발표할 예정이던 '대ㆍ중소기업 상생협의회' 자료가 오후 4시가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경련과 중소기업중앙회 대표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 안건은 원자재 가격 상승률에 맞춰 납품가를 올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납품가 연동제'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니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합의안 발표가 늦어졌다.

회의를 준비한 한 관계자는 "사전에 의견 조율을 해 기본적인 합의안을 도출한 후 회의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오늘은 조율이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는 처음부터 팽팽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기협중앙회는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고통을 분담해 주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납품가 연동제가 조속히 법제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전경련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가 인상률을 사전에 정해놓는 것은 대기업에 원자재값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뜻"이라며 "개별 사안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합의를 통해 납품가를 인상하는 쪽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참석자는 "석유와 원자재 가격이 연일 치솟는 가운데 경기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화물연대마저 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힘든 것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이날의 우울했던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참석자는 "정부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불거진 후 내각 총사퇴 얘기가 나올 만큼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것을 빗댄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 단가에 적기에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이달 중으로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떤 방안을 내놓아도 경제계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와 정부가 '표류하는 배 위에서 동료들끼리 싸우는 형국'을 극복하고 기업인들의 시름을 덜어 줄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송형석 산업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