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위치한 A사는 '환경보호 우수기업'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대기환경보전법에 명시된 배출허용 기준의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업체도 빡빡하게 책정돼 있는 먼지 할당량 기준만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현행 법령에 명시된 먼지 할당량은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했을 때 발생하는 먼지의 절반 수준이다.

A사 관계자는 "현재 기술로 가능한 최상의 방지시설을 운영해도 기준을 지키기 어렵다"며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수백억원에 달하는 부담금을 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을 자주 청소해야 하는 B사는 일용직 근로자에게 무조건 8시간 동안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는 법령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통상 청소 업무는 하루 안에 일이 끝난다.

하지만 법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면 될 일을 교육 시간을 합해 이틀간 해야 한다.

B사 관계자는 "법령 위반임을 알지만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10~20분 교육한 후 일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1일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비현실적인 규제 △저품질 규제 △내용이 모호한 규제 △중복 규제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 △역차별적 규제 △공공부담을 민간에게 전가하는 규제 등 7가지 유형으로 분류,이에 해당하는 불량규제 사례 30가지를 발표했다.

전경련은 비현실적인 규제로 앞의 두 가지 사례 외에 △4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재해는 무조건 산업재해로 간주해야 한다는 조항 △모든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할 때 상근 임원의 결재를 거치도록 한 조항 등을 들었다.

저품질 규제는 법령을 지키기 위해 기업이 투자해야 하는 비용에 비해 효과가 미미한 규제를 뜻하는 말이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규제 사례를 보여주는 건 야채 유통업체 C사의 경우다.

이 회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에 따라 23가지 야채에 대해 매주 한 번씩 자가식품검사를 하고 있다.

한 종류의 야채를 검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만~15만원.사업장당 월 평균 매출이 3000만원 정도인데,그 3분의 1인 1000만원이 야채 검사비용으로 들어간다.

C사 측은 "야채는 유통기간이 짧아 생산자가 출고 전에 한 번 검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법령을 지키면서 적자를 면하려면 야채 검사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품질 규제로는 이 밖에도 연간 의약품 제조량의 10% 이상을 소량 포장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조항,화장품 포장공간 비율을 제한(20%)한 조항 등이 꼽혔다.

연구개발(R&D) 투자를 위한 연구시설을 '주시설'이 아닌 '부대시설'로 보고 있는 조항과 교통영향평가가 필요한 사업을 벌일 때 광역교통체계 개선비용을 부담하도록 돼 있는 조항 등은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로 분류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원사들이 건의한 512건의 애로사항을 분석해 30개 규제를 골랐다"며 "정부의 규제개혁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기업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