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연비야, 멍청아.(It's the fuel efficiency,stupid!)"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면서 기름값 부담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구다.

빌 클리턴 전 미국 대통령이 사용한 유명 선거캠페인 구호인 '문제는 경제야,멍청아(It's the economy,stupid)'를 패러디한 이 말은 연비가 신차 구매 때 최우선 잣대가 되는 요즘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도심지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ℓ당 2000원을 넘나들면서 자동차 구매 때 연비를 먼저 따져보는 분위기가 확연해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연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고연비 차량을 내놓는 일은 국내외 자동차 업체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차 무게를 줄이고 엔진의 연소 효율을 높이는 등 연료 절감을 위한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바야흐로 '얼마나 멋진가' '얼마나 빠른가'보다는 '얼마나 오래 달리느냐'가 훨씬 중요한 시대가 왔다.


◆연식변경 때 연비개선은 기본


현대자동차가 지난 4일 선보인 중형 SUV 싼타페의 2009년형 모델은 이전 모델에 비해 연비가 4% 이상 개선됐다.

배기량 2000cc급 디젤 2륜구동 모델(자동변속기)의 공인 연비는 ℓ당 13.2㎞로 국내 시판 중인 SUV 중 가장 높다.

지난달 초에 나온 현대차 투싼과 기아자동차 스포티지의 연비도 각각 기존 12.6㎞에서 13.1㎞(2륜구동.자동변속기)로 4%가량 높아졌다.

연비 경쟁에서는 수입차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이달 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중형 승용차 파사트 2.0 TDI(디젤엔진)는 연비가 ℓ당 15.1㎞로 구형 모델(13.9㎞)보다 8.6%나 높아졌다.

이 모델은 국내 시판 중인 중형차 중에서는 유일하게 8월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에너지소비효율등급상 1등급(15.0㎞/ℓ이상)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휘발유를 쓰는 SUV 모델도 늘어나고 있다.

경유값이 휘발유값보다 비싸지면서 기존의 디젤 SUV 판매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달 들어 베라크루즈 3.8 가솔린 모델과 가격대를 1500만원대로 낮춘 투싼 가솔린 모델 워너비를 선보였다.

기아차는 모하비, 르노삼성은 QM5의 가솔린 모델을 곧 내놓을 계획이다.


◆무게 줄이고 열효율 높이고


자동차 업체들이 연비 향상을 위해 주로 쓰는 방법은 소재 경량화다.

가벼운 소재를 써서 차량의 무게를 줄이면 그만큼 연료 소모도 적어진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무게를 1% 줄이면 연비는 0.5%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는 차체에 쓰인 강판의 74.5%가 고장력이다.

고장력 강판은 충격을 견뎌내는 힘이 일반 강판보다 2배가량 강해 재료를 적게 쓰고도 안전성을 높일 수 있어 차체 중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연비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엔진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대차는 엔진 부속품 중 피스톤,피스톤 링,밸브 등의 마찰면을 코팅 처리해 마찰열을 최소화하고 있다.

혼다코리아가 지난 1월 국내에 선보인 어코드 8세대 모델에는 가변 실린더 제어기술인 VCM(variable cylinder management)이 적용됐다.

저속으로 달릴 때는 6개의 실린더 중 3~4개만 작동하도록 해 연료가 덜 들게끔 하는 기술이다.


◆디젤모델이 가솔린보다 연비 우수


정부는 오는 8월부터 연비 기준을 바꿔 엔진 크기에 상관없이 ℓ당 주행거리가 15㎞ 이상이어야 1등급을 부여키로 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연비 1등급 차량은 국산차와 수입차를 합쳐 40여종에 달한다.

선택의 폭이 의외로 넓다는 얘기다.

최고 연비 차량은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1339cc)로 ℓ당 23.2㎞다.

하이브리드카가 아닌 일반 차량 가운데선 현대차 베르나 1.5 디젤 모델이 공인연비가 17.4㎞로 가장 좋고 기아차 프라이드 1.5 디젤은 16.9㎞다.

현대차 아반떼와 i30 1.6 디젤도 나란히 16.5㎞의 고연비를 자랑한다.

가솔린 차량 가운데선 경차인 기아차 모닝 1.0과 GM대우 마티즈(798cc)는 연비가 똑같이 16.6㎞로 가장 높다.

2000cc급 차량 가운데서는 폭스바겐 골프 2.0 TDI가 15.7㎞로 연비가 제일 좋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