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이만섭 前 국회의장 "촛불 꺼지기만 기다리는 참모들…대통령이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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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렇게 갈기갈기 찢겨 걱정스럽다.
이제 모두 나보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의 한 찻집에서 만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나라 걱정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연일 계속되는 쇠고기 협상 파동에 따른 촛불집회와 화물연대 파업,문도 못 연 국회 등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대한민국호'를 바라보는 정치원로로서 할말이 많은 듯했다.
실제 한 시간여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연신 '나라''국민''애국심'을 입에 올린 이 전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야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민주화 이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쇠고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뭐라 보는지.
"나는 이번 촛불시위를 순수하게 이해한다.
당장 건강에 대한 문제이므로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보수세력 득세에 따른 진보세력의 반격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가 너무 협상을 서둘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왔다.
대통령이 눈앞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서두르다 생긴 부작용이다.
건설회사 운영과 국가 운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사는 수주를 많이 하고 빨리 처리해 이윤을 남기면 되지만 국가경영에는 다양한 국민과 여야,국회,언론이 있다.
모든 여론을 잘 분석하고 수렴해 신중하게 결심을 해야 했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에서 문제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사명감 있는 사람이 없다.
쇠고기 파동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 가 있으니 총리 이하 장관들은 대통령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라.'촛불'도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서 저절로 꺼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참 대통령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오기 전에 먼저 나서서 설명하고 책임질 일 있으면 사표를 내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대통령 대신 국민의 매를 맞겠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며 이 대통령이 참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광우병연대에서는 정부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퇴진운동까지 벌일 수 있다고 한다.
"(촛불시위가) 정권타도의 과격시위로 변하는 것은 국민도 원하지 않을 뿐더러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이 대통령이 물러가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그런 점에서 시한을 정해놓고 재협상 안하면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이는 정치집단의 정권 타도운동과 같다.
촛불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나라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지지율이 10% 후반대로 떨어졌는데.원로로서 조언을 한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일로 불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모든 걸 대통령이 다 하려는 게 문제다.
일산 어린이 납치미수 때 경찰서에 직접 가고 대불공단 전봇대도 직접 뽑으려 했다.
장관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하고 맡길 것은 맡겨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은 여의도를 자꾸 멀리 하려 하지 말고 가까이 해야 한다.
민주정치를 하려면 국회와 가까워야 한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친박복당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당내 문제도 해결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야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화합하겠다고 말을 할 수 있겠나."
―민심이반에 국정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생후 100일에는 일어나지도 못한다.
돌이 지나야 일어선다.
겨우 100일이 지났으니 너무 심하게 비판하거나 비난해서 의기소침하도록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심기일전해서 용기를 갖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해줬으면 좋겠다.
못해먹겠다고 넘어지면 또 어떻게 할 건가.
본인도 이번 일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겠나."
―대통령이 국정쇄신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종교계 원로들을 만났는데.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원로들 만난다 해서 전화 오길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정치에 경험이 많은 정치 원로들을 자주 만나 조언을 듣는 게 본인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야당 총재를 맡았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조언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이런 관행이 없어졌는데 나라가 잘되려면 원로들을 비공식적으로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이 대통령이 조각 때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인적쇄신에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강부자(강남 땅부자)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강부자는 몰라도 고소영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이 너무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고소영을 쓰더라도 적재적소에 깨끗하고 유능한 사람을 쓴다면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땅투기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배제해야 하는 만큼 강부자는 문제가 있지만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깨끗하고 사명감 있는 사람을 쓰면 된다고 본다."
―통합민주당 등 야당이 장외투쟁을 한다며 거리로 나갔다. 18대 국회는 아직 문도 열지 못하고 있는데.
"4·19 민주화운동 때 대학 교수들이 가두행진을 할 때도 의원들은 국회를 지켰다.
6·3 한일굴욕외교 반대집회 와중에도 야당 의원들은 원내 투쟁을 했지 국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나라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국회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국회의원의 본분이며 국민에 대한 의무다.
야당은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찾고 있으나 의원으로서 국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명분이다.
총선에서 국민들이 국회 가서 일하라고 했지,장외투쟁을 하라고 뽑아준 것은 아니지 않으냐.국회의원은 스스로가 법을 지켜야 하는데 개원조차 못 하는 것은 위법이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개원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하게 물러난 것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힘이 쏠린 권력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이 모든 일을 혼자 다 하게 하는 제도는 대통령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현 제도 하에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5년간 죽으나 사나 기다려야 한다.
내각제도 좋으나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을 원한다면 이원집정부제로 권력 분산을 유도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18대 국회에서 관련 논의 기구를 둬서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정리=노경목 기자/사진=양윤모 기자 autonomy@hankyung.com
이제 모두 나보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의 한 찻집에서 만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나라 걱정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연일 계속되는 쇠고기 협상 파동에 따른 촛불집회와 화물연대 파업,문도 못 연 국회 등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대한민국호'를 바라보는 정치원로로서 할말이 많은 듯했다.
실제 한 시간여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연신 '나라''국민''애국심'을 입에 올린 이 전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야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민주화 이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쇠고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뭐라 보는지.
"나는 이번 촛불시위를 순수하게 이해한다.
당장 건강에 대한 문제이므로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보수세력 득세에 따른 진보세력의 반격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가 너무 협상을 서둘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왔다.
대통령이 눈앞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서두르다 생긴 부작용이다.
건설회사 운영과 국가 운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사는 수주를 많이 하고 빨리 처리해 이윤을 남기면 되지만 국가경영에는 다양한 국민과 여야,국회,언론이 있다.
모든 여론을 잘 분석하고 수렴해 신중하게 결심을 해야 했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에서 문제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사명감 있는 사람이 없다.
쇠고기 파동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 가 있으니 총리 이하 장관들은 대통령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라.'촛불'도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서 저절로 꺼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참 대통령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오기 전에 먼저 나서서 설명하고 책임질 일 있으면 사표를 내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대통령 대신 국민의 매를 맞겠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며 이 대통령이 참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광우병연대에서는 정부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퇴진운동까지 벌일 수 있다고 한다.
"(촛불시위가) 정권타도의 과격시위로 변하는 것은 국민도 원하지 않을 뿐더러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이 대통령이 물러가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그런 점에서 시한을 정해놓고 재협상 안하면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이는 정치집단의 정권 타도운동과 같다.
촛불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나라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지지율이 10% 후반대로 떨어졌는데.원로로서 조언을 한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일로 불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모든 걸 대통령이 다 하려는 게 문제다.
일산 어린이 납치미수 때 경찰서에 직접 가고 대불공단 전봇대도 직접 뽑으려 했다.
장관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하고 맡길 것은 맡겨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은 여의도를 자꾸 멀리 하려 하지 말고 가까이 해야 한다.
민주정치를 하려면 국회와 가까워야 한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친박복당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당내 문제도 해결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야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화합하겠다고 말을 할 수 있겠나."
―민심이반에 국정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생후 100일에는 일어나지도 못한다.
돌이 지나야 일어선다.
겨우 100일이 지났으니 너무 심하게 비판하거나 비난해서 의기소침하도록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심기일전해서 용기를 갖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해줬으면 좋겠다.
못해먹겠다고 넘어지면 또 어떻게 할 건가.
본인도 이번 일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겠나."
―대통령이 국정쇄신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종교계 원로들을 만났는데.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원로들 만난다 해서 전화 오길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정치에 경험이 많은 정치 원로들을 자주 만나 조언을 듣는 게 본인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야당 총재를 맡았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조언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이런 관행이 없어졌는데 나라가 잘되려면 원로들을 비공식적으로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이 대통령이 조각 때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인적쇄신에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강부자(강남 땅부자)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강부자는 몰라도 고소영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이 너무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고소영을 쓰더라도 적재적소에 깨끗하고 유능한 사람을 쓴다면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땅투기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배제해야 하는 만큼 강부자는 문제가 있지만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깨끗하고 사명감 있는 사람을 쓰면 된다고 본다."
―통합민주당 등 야당이 장외투쟁을 한다며 거리로 나갔다. 18대 국회는 아직 문도 열지 못하고 있는데.
"4·19 민주화운동 때 대학 교수들이 가두행진을 할 때도 의원들은 국회를 지켰다.
6·3 한일굴욕외교 반대집회 와중에도 야당 의원들은 원내 투쟁을 했지 국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나라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국회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국회의원의 본분이며 국민에 대한 의무다.
야당은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찾고 있으나 의원으로서 국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명분이다.
총선에서 국민들이 국회 가서 일하라고 했지,장외투쟁을 하라고 뽑아준 것은 아니지 않으냐.국회의원은 스스로가 법을 지켜야 하는데 개원조차 못 하는 것은 위법이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개원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하게 물러난 것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힘이 쏠린 권력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이 모든 일을 혼자 다 하게 하는 제도는 대통령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현 제도 하에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5년간 죽으나 사나 기다려야 한다.
내각제도 좋으나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을 원한다면 이원집정부제로 권력 분산을 유도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18대 국회에서 관련 논의 기구를 둬서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정리=노경목 기자/사진=양윤모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