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내에서 경제의 혈액인 돈이 다시 안 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때문에 각종 위기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장 자금의 부동화 정도를 나타내는 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지난달 무려 10조원이 몰렸다.

이달 들어서는 하루 1조원이 넘게 몰릴 때도 많다.

또 시중에서 퇴장하는 자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 나라 경제에 있어서 돈이 돌지 않으면 사람의 몸처럼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손발부터 썩어 가는 증상이 나타난다.

현 정부 들어 있는 계층과 대기업보다는 서민층과 중소기업일수록 어려움을 호소하다 못해 쓰러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론적으로 특정 국가에서 돈이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는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다.

통화유통 속도란 일정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돈이 잘 유통되지 않아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통화 승수도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 통화(고성능 화폐;high-powered money)로 나눠 산출되는 수치다.

통화 승수는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보유 성향과 예금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처럼 기준 금리가 10개월간 변경되지 않을 때는 현금보유 성향과 지급준비율이 작을수록 통화 승수는 커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우리나라 통화 승수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국민들의 현금보유 성향이 늘어나 시중에서 돈이 퇴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플레 억제 차원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통화 승수가 떨어지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경기를 감안해 기준 금리 인상이 어려우면 혹시 지급준비율을 올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최근처럼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가 떨어지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민간 부문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 경제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또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돈이 제대로 돌지 않음에 따라 종전 배웠던 경제 이론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상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경제학의 혼돈시대(chaos of economics)'다.

한 나라 경제에 돈이 안 돌면 자연스럽게 위기론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최근 거론되는 위기론은 크게 세 가지다.

'성장대안 부재론'과 '샌드위치 위기론'은 이미 나온 지 오래됐고 최근에는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의 발언 이후 제2의 외환위기설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증시가 한 나라 경제의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최근처럼 돈이 안 돌고 위기론이 고개를 들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화된 시중 자금의 물꼬는 증시에서 터진다.

반드시 증시 자금이라고 볼 수 없지만 증권사 종합자산관리(CMA) 예탁금이 지난 5월 9320억원 증가한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다시 안 돌고 위기론이 나돌 때는 증시로 물꼬가 트인다 하더라도 주가는 상하 변동폭이 크고 기업 혹은 업종 간 차별화가 심하게 나타난다.

올 1월 이후 가치(value)에 비해 주가(price)가 많이 떨어진 업종을 중심으로 직접 매입(cherry picking)을 권유하고 한 달 전부터 펀드와 같은 간접 투자를 추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에 돈이 돌아 생기를 되찾고 위기론이 불식돼야 한다.

여러 방안 가운데 최근과 같은 상황이 현 정부와 정책 수용층 간의 신뢰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이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