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라면업체들의 가격담합 혐의를 포착하고 조사에 나선 데 이어 이동통신사,병원,정유사 및 액화석유가스(LPG) 업체 등으로 조사 범위를 넓혀 갈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해당 분야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서민 물가 안정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무리한 시정 명령 및 과도한 과징금은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기 때문.실제로 기업들이 제기한 소송 중 올해 서울고법에서 선고된 16건을 분석해 본 결과 공정위가 100% 잘못됐다는 판결이 3건,일부 잘못됐다는 판결이 6건 나왔다.

공정위의 잘못된 결정이 절반을 넘는다는 얘기다.

포스코는 2001년 공정위로부터 시정 조치 및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냉연 강판의 재료가 되는 냉연용 열연코일 공급을 요청하는 현대하이스코와의 거래를 거절했다는 이유다.

국내 유일의 일관 제철회사로서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데 냉연용 열연코일 공급을 거절해 경쟁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방해했다는 것.하지만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4월 "포스코의 거래 거절로 상품 가격이 상승하고 산출량 및 다양성이 감소하는 등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가 없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또 대한주택공사는 2004년 논현동에 위치한 회사 소유의 5층 빌딩을 자회사인 한국건설관리공사에 임대해 줬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이 빌딩을 정상 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은 임대료와 관리비로 빌려 줘 한국건설관리공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 행위를 했다며 시정 명령 및 2억7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7부는 대한주택공사 측 손을 들어 주었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준 사법기관으로서 철저한 조사 끝에 위법 행위에 대해서만 시정 조치를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한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는 국가 기관으로서 준 사법적 절차로 시정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원에서 공정위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부 무리한 시정 조치로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없도록 더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경제 검찰'인 공정위 입장에서는 강한 시정 조치와 과징금 부과를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경제정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관련 법안 해석에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정위 퇴직 간부들의 대형 로펌행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무리한 조사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로펌으로 가서는 거꾸로 과징금을 깎기 위한 소송에 나서는 모양새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공정위에서 퇴직한 4급 이상 직원 33명 중 25명이 로펌이나 대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진정한 '경제 검찰'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들로부터 보다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