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릴레이 기고] 광화문, 진정한 아고라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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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실 <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 >
어디서 많이 본 사진이었다.
수많은 불빛이 종로,광화문,시청 광장을 메워 흘러가는 용암처럼 분출하는 모습은 2002년 월드컵 때의 바로 그것이었다.
사이버 축구 동호회였던 '붉은 악마'가 오프라인으로 뛰어나와 축구의 열정을 현실화했고,디지털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대형 스크린은 그들의 감성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그리고 온라인의 담론이 오프라인으로 분출되는 모습은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 인사이드의 촛불 시위 제의가 효순이 미선이 추모제로,노사모의 담론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되풀이됐다.
그후 참여정부 5년 동안 인터넷 담론은 정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2007년 대선 진영에서의 초미의 관심사도 UCC로 대변되는 온라인 담론구조였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물길(대운하)이 인터넷의 말길(言路)을 잠재웠다.
지금 정부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드디어 철없던 20대 누리꾼들이 '88만원 세대'란 현실에 깜짝 놀라 아날로그 담론만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최근 '광우병' 문제로 인터넷이 들끓더니 급기야 누리꾼들이 시청 앞 광장으로 나와 연일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누리꾼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가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청 앞에 실현된 것인지,아니면 어느 보수 문학가의 말처럼 '끔찍한 포퓰리즘'의 재현으로서 콜로세움이 다시 나타난 것인지 현재 나의 깜냥으로는 알 길이 없다.
넥타이 부대와 유모차 부대가 자신과 아이의 장래를 걱정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지,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배후 세력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소를 안 먹는 것은 맛이 없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옳은지 그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앞으로 정보의 생산과 소비,교환에 있어 인터넷이 기존 매체를 압도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처음 문자가 발명됐을 때,필사본 책이었기 때문에 소수만이 지식을 독점했다.
인쇄매체가 발명되자 다수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으나 지식의 생산자는 소수였고 우리는 그들을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발명 이후 지식의 생산과 소비는 모두 다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위키피디아를 보라.물론 잘못된 정보를 거르는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다수의 누리꾼이 힘을 모아 만든 백과사전의 정확도가 거의 책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인터넷에는 수많은 쓰레기 정보가 있고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괴담에 부화뇌동하는 국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집합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이 얼마나 무섭고도 정확한지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식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온 국민들을 향해 자신이 움켜쥔 정보가 정확하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이제 지식인이 '가르침'의 중심부에서 '배움'의 보조자로 내려와야 할 것 같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점에서 다중,우중이란 가치판단을 일단 유보해 두자.
분명한 것은 소통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방식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과격하다는 사실이 곧바로 그 소통구조가 잘못됐다고 무조건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연결돼서는 안된다.
이제 정부는 젊은 국민의 여론 형성 방식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담론의 장으로 갈 수 있도록 여러 방향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가 학살의 장소였던 콜로세움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광장인 아고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사진이었다.
수많은 불빛이 종로,광화문,시청 광장을 메워 흘러가는 용암처럼 분출하는 모습은 2002년 월드컵 때의 바로 그것이었다.
사이버 축구 동호회였던 '붉은 악마'가 오프라인으로 뛰어나와 축구의 열정을 현실화했고,디지털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대형 스크린은 그들의 감성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그리고 온라인의 담론이 오프라인으로 분출되는 모습은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 인사이드의 촛불 시위 제의가 효순이 미선이 추모제로,노사모의 담론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되풀이됐다.
그후 참여정부 5년 동안 인터넷 담론은 정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2007년 대선 진영에서의 초미의 관심사도 UCC로 대변되는 온라인 담론구조였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물길(대운하)이 인터넷의 말길(言路)을 잠재웠다.
지금 정부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드디어 철없던 20대 누리꾼들이 '88만원 세대'란 현실에 깜짝 놀라 아날로그 담론만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최근 '광우병' 문제로 인터넷이 들끓더니 급기야 누리꾼들이 시청 앞 광장으로 나와 연일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누리꾼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가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청 앞에 실현된 것인지,아니면 어느 보수 문학가의 말처럼 '끔찍한 포퓰리즘'의 재현으로서 콜로세움이 다시 나타난 것인지 현재 나의 깜냥으로는 알 길이 없다.
넥타이 부대와 유모차 부대가 자신과 아이의 장래를 걱정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지,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배후 세력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소를 안 먹는 것은 맛이 없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옳은지 그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앞으로 정보의 생산과 소비,교환에 있어 인터넷이 기존 매체를 압도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처음 문자가 발명됐을 때,필사본 책이었기 때문에 소수만이 지식을 독점했다.
인쇄매체가 발명되자 다수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으나 지식의 생산자는 소수였고 우리는 그들을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발명 이후 지식의 생산과 소비는 모두 다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위키피디아를 보라.물론 잘못된 정보를 거르는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다수의 누리꾼이 힘을 모아 만든 백과사전의 정확도가 거의 책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인터넷에는 수많은 쓰레기 정보가 있고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괴담에 부화뇌동하는 국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집합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이 얼마나 무섭고도 정확한지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식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온 국민들을 향해 자신이 움켜쥔 정보가 정확하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이제 지식인이 '가르침'의 중심부에서 '배움'의 보조자로 내려와야 할 것 같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점에서 다중,우중이란 가치판단을 일단 유보해 두자.
분명한 것은 소통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방식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과격하다는 사실이 곧바로 그 소통구조가 잘못됐다고 무조건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연결돼서는 안된다.
이제 정부는 젊은 국민의 여론 형성 방식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담론의 장으로 갈 수 있도록 여러 방향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가 학살의 장소였던 콜로세움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광장인 아고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