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좋아하던 쇠고기를 안 먹겠대요.

쇠고기 먹으면 초등학교 4학년도 못 다닌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대요."

유치원생 아들을 둔 민모씨는 혀를 찼다.

2008년 초여름 한국사회는 '사이비 여론'이 만들어낸 '뇌송송 구멍탁'공포로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생들까지 거리로 나오게 했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이후 인터넷이 제기한 '안전 먹거리' 운동은 공감을 얻을 만한 주제였다.

소비자 주권을 지켜내자는 명분도 좋았다.

소비자 운동이 겨냥한 목표는 대부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는 방안을 민간 합의로 이행한다는 데 잠정합의를 모아가고 있는것.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이 같은 내용의 조문화를 시도하고 있다.

성과주의 일변도였던 MB의 통치스타일을 다잡게 하는 부수적 성과도 얻었다.

인터넷은 이미 승리를 쟁취했다.

그런데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되레 공기업민영화반대,공영방송지키기 등으로 군불을 때고 있다.

불길은 정권퇴진을 겨냥하면서 인터넷 권력의 마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은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을 보인다.

한편에선 이타주의 정서가 강하다.

인터넷 상에서 모금이 잘되는 게 이 때문이다.

올 1월 미국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봅슬레이 대회'에서 빌린 장비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열악한 훈련 환경이 알려지자 1500여명의 네티즌이 140만원을 모금해 전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선량한 얼굴 이면에 야수의 얼굴을 숨기고 있다.

네티즌들은 뜨거운 사회현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는 사이트에서 자기합리화에 나서고,반대 의견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데 열을 올린다.

개그우먼 정선희씨가 촛불 집회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라 방송에서 하차한 게 대표적이다.

또 촛불시위와 관련,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가 친정부 편향이라며 공격해 굴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피아가 따로 없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다.

인터넷의 공격성은 특히 한국 특유의 댓글문화로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올리고 여기에 답하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여겨 전선(戰線)을 구축한다.

이어 전쟁이 벌어지면서 구경꾼이 몰리고,구경꾼은 진실의 편이 아닌 약자의 편을 든다.

구경꾼이 싸움꾼(동조자)으로 바뀌는 게 가장 나쁜 케이스다.

이번 쇠고기 파동이 이런 곡절을 밟았다.

인터넷 공간에 중간지대는 없다.

천사와 야수만 존재한다.

그게 문제다.

맷돌 자루를 어처구니라고 한다.

맷돌에 동력을 전달하는 것도,멈춰서게 하는 것도 어처구니다.

국회와 언론이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어처구니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번 '쇠고기 국난'에선 그렇지 못했다.

무소불위의 '인터넷 권력'이 칼을 휘두르는 것만 눈뜨고 지켜볼 따름이었다.

인터넷엔 자정능력이 없다.

다른 의견을 경청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방치할 순 없다.

시대변화에 맞춰 청와대에 인터넷 여론을 살피고 소통하는 '어처구니 비서관'을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인터넷에 없는 어처구니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지나친 쏠림과 비과학이 진실을 압도하는 우리 사회를 어느 정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남궁 덕 오피니언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