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집행부 파업강행 방침에 노조원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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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결을 가결이라니… 자유당때 사사오입이냐"
민주노총과 현대차지부의 파업 강행 방침에 조합원들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17일 오전에는 노조 집행부를 규탄하려는 조합원들이 한꺼번에 몰려 노조 인터넷 게시판이 4시간가량 다운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조합원들은 "부결을 어찌 가결이라고 주장하느냐"며 "지금이 자유당 시절도 아닌데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파업을 사사오입식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고 질책했다.
아이디 '파이어니아'인 현대차 조합원은 "더 이상 생떼쓰기를 시도한다면 노조는 퇴진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며 "노조가 걸핏하면 정권 퇴진을 외치듯 조합원들도 노조 퇴진을 외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조합원'이라는 게시자는 "현장조합원인데 현 집행부을 당선시킨 게 원망스럽다"며 "노조가 그렇게 정치파업을 하고 싶었는지,법도 무시하고 찬성률만 높이고 지금 고유가 등 어려운 시기인데 민노총의 정치파업에 총대를 메고 꼭 앞장서야 하는지"라고 꼬집었다.
다른 조합원(아이디 아전인수)은 '21년 역사상 쟁의행위 찬반투표 첫 부결'이란 글에서 "이제 노조가 제발 조합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고 노조 지도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아이디 '조하번'은 '집행부의 결단이'란 글에서 "재적 대비가 아니면 부결이 아니냐"며 "노조집행부는 조합원 민의를 겸허히 수렴하고 정치적인 이슈에 냉담한 현장정서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자유게시판에도 파업강행방침을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아이디 '무명씨'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이유없이 정치파업을 해대면 일도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사느냐"며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그런 논리로 하는 구시대적인 파업은 자제하자"고 충고했다.
아이디 '금속조합원'은 "노동자의 생존권이 걸린 파업은 국민들로부터 지지가 있어야 되며 파업은 스포츠도,방망이로 때리며 내달리는 야구가 아니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일선 조합원들 정서는 무시한 채 미국산 쇠고기수입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노조는 이날 현자지부 소식지를 통해 "18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리는 금속노조 대각선 교섭에서 회사측이 중앙교섭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바로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파업수순을 밟겠다"고 밝혔다.
쇠고기파업의 현장 민심을 파악한 현대차 노조는 파업명분을 금속노조 교섭결렬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쇠고기 총파업 때와 같은 날 파업에 돌입하기로 해 사실상 민주노총의 하투에 힘을 보태기 위한 정치적 파업 성격이 강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조는 이를 위해 오는 26~27일 또 다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금속노조 파업도 사실상 현대차의 임금교섭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파업 성격이 강해 조합원들이 이를 지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에 매달려 정작 조합원들의 복지와 직결되는 임금교섭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노조지도부에 대한 원성이 높은 상태이다.
노동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합원들의 반파업 정서는 작년 금속노조의 FTA저지 정치파업을 정면으로 거부했던 사례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6월 조합원의 찬반투표 없이 민주노총의 FTA반대 파업을 결정한 이후 '현대차 불매 운동' 등 반대 여론이 고조되자 당초 사흘 일정의 파업을 이틀간의 부분파업으로 축소했다.
당시 금속노조의 FTA 정치파업이 실패한 이유는 4만4000여명의 현대차 지부 조합원들이 과거와 같은 파업동력을 실어주지 않은 게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차 조합원들의 이 같은 변화가 지난 20년간 파업역사로 얼룩진 현대차 노조를 변화시키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교수(경제학)는 "이젠 무조건 조합원들에게 강요하는 식의 전투적 노동운동은 먹혀들지 않는다"면서 "말없는 조합원들의 정서를 제대로 읽고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상공회의소 김영주 전무도 "앞으로 현대차 노사의 근로조건과는 무관한 정치문제로 인한 노조의 파업은 힘들 것이고 이는 많은 시민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