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낮은 채 밀어붙이다간 '역풍' 우려
임태희 의장 "수도·전기·가스·건보 민영화 안해"

최경환 한나라당 수석정조위원장은 공기업 개혁을 후순위로 미루자는 임태희 정책위 의장의 최근 주장에 대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설명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개혁에 대한 저항을 무마시킬 동력을 얻기가 힘들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일단 퇴각한 후 작전을 다시 짜고 전열을 재정비해 개혁 작업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집권 초기의 이점 이미 잃었다

임 의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기업 개혁을 집권 초기에 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대체로 초기에 대통령 지지율이 높기 때문인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개혁을 밀어붙이기에는 정권에 대한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한 초선 의원은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정부의 얘기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런 불신의 늪에서 공기업 개혁을 건져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의장이 18일 "수도,전기,가스,건강보험 등은 민영화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힌 것도 '수돗물 괴담'과 같은 국민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유가와 고물가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공기업 개혁이라는 '대작업'을 시작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서민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당력을 집중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임 의장은 이날 한나라당 초선의원 연찬회에서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빼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일단은 모든 것을 접고 서민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이 '이제 한나라당에 맡겨도 되겠구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자"며 여권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질적인 혁신이 더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공기업 개혁의 속도 조절에 나선 데에는 차제에 정교한 전략을 짜 추진해야 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짜놓은 로드맵이 아직까지 반대 세력의 저항을 무력화할 만큼 정교한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공공부문 개혁의 목표부터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인데 마치 공기업 민영화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임 의장은 "공공부문 개혁의 진짜 목표는 국민들에게 양질의 공공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몸집도 줄여야 하지만 질적인 혁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공기업마다 서비스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이유가 방만한 경영 때문인지,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조건 '몸집을 줄여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대선 곤란하다는 것.유일호 의원은 "비효율적인 요소를 제거해 값싸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혹시 잘못된 민영화로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거나 서비스의 질이 더 떨어지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