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코너'에 몰려 있지만 공공부문 개혁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촛불집회에 이어진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시국이 혼란스러워 전면적인 민영화에 부담을 느낀다면 민생과 직결되지 않은 기관들만 골라 1단계로 하고,논란이 불가피한 곳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2단계로 추진하는 식의 단계적 민영화라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업무가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통합,산업은행 등 민간과 경쟁하는 금융공기업 민영화 등 상징성 있는 개혁조치는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공기업 수술 불가피

공기업들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커 민간기업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분야에서 주로 탄생했다.

한국전력 도로공사 주공 토공 등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시장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민간자본 역할이 늘어 공기업의 영역은 줄어들어야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공기업 자체의 조직논리로 규모를 계속 키워 민간부문의 발전을 제약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참여정부 집권 5년 동안 공공기관 수는 253개에서 298개로 늘어났다.

전체 임직원 수도 2002년 19만1000명에서 작년 말 25만9000명으로 6만8000명이나 불어났다.

이에 따라 전체 취업자 중 공공기관 임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0.87%에서 작년 말 1.11%까지 높아졌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2002년 206조원에서 2007년 338조원으로 132조원(64.1%) 증가했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덩달아 높아졌다.

2003년 말 4350만원이었던 게 작년 말 5340만원으로 뛰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5.3%였다.

외형이 커졌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전체 공공기관의 당기순이익 규모는 2003년 말 31조1000억원에서 작년 말 17조4000억원으로 연평균 13.5%씩 감소했다.

작년 결산에서 적자를 기록한 공공기관은 무려 89개.공기업 세 곳 중 하나는 적자라는 얘기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서둘러야

이런 문제 때문에 공기업 민영화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한나라당도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다만 촛불집회로 힘을 잃은 마당에 섣불리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내용과 절차 두 가지 측면에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어느 공기업을 우선 매각할 것인가'라는 내용면에서는 단계적 접근법을 주문했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민간과 사실상 경쟁하고 있어 누가 봐도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하는 공기업부터 민영화하자"고 주장했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나 국책은행이 지분을 취득한 우리금융지주 대우조선 현대건설부터 처분하자는 것이다.

도계 화순 등 몇몇 지역의 탄광을 제외하고는 경제성면에서 한계에 도달한 석탄공사는 부분 매각 뒤 청산하고,카지노 사업을 하고 있는 그레이스코리아처럼 공공부문에 걸맞지 않는 기업을 우선 민영화하자는 방안도 거론된다.

반면 물가 급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고려해 에너지 기업(한전의 발전자회사, 가스공사 등)과 사회간접자본 기업(도로공사 철도공사 등)은 여건이 성숙되면 민영화 수순을 밟으라는 지적이다.

절차 측면에서도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옥동석 인천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정부가 민영화 방안을 대대적이고 일방적으로 발표할 것이 아니라 큰 얼개만 짜놓고 대상 공기업별로 이해 관계자들을 참여시키는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가면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래도 국민들이 불안해 하면 도로 전기 가스 물 등 서민생활에 필수적인 품목들은 과거 통신 민영화 때처럼 급격한 요금 인상을 정부가 한동안 제어할 수 있는 규제위원회를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기현/김인식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