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도가 지난 9일부터 20일 현재까지 열흘째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6월 들어 한국에서만 약 3조원의 매물을 쏟아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신흥시장 전반에서 꾸역꾸역 매물을 내놓고 있다. 펀더멘털 문제 때문이 아니라 미국 경기침체, 고유가 등 해외 전반적인 문제로 인해 잔뜩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매도세를 늦출 기미가 당분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아시아 신흥증시 전체가 졸지에 현금인출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외국인과 달리 꾸준히 매수에 가담하는 측은 개인투자자들이다.

개인은 6월 들어 약 1조7000억원 가량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 매물의 절반 정도를 소화한 셈이다. 일자별로도 지난 5일부터 20일 현재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과 개인의 매수/매도 방향이 이처럼 엇갈리는 반면, 기관은 6월 들어 4000억원대 순매수에 그쳤다. 증권, 보험, 은행, 종금, 연기금 등 다른 기관들은 모두 순매수였지만 투신이 6000억원대 순매도를 보였다.

개인이 용감한 것인지, 기관이 소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외국인, 개인, 기관의 스탠스가 이렇다 보니 전체 장세는 프로그램 매매 방향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커졌다.

박문서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의 현물 매도와 개인의 저가매수가 수급 균형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프로그램 매매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형국”이라며, “반등시 개인의 차익실현으로 인해 차익매수보다는 차익매도의 영향력이 우세한 상태”라고 분석하고 있다.

프로그램 매매가 주도하는 시장은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주식시장이라는 곳이 뭐니뭐니해도 수익 추구가 최고의 선(善)이다. 그렇지만 현물시장에서는 그래도 ‘인정’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

펀더멘털이 굳건한 저평가 상태의 종목과 업종은 투자자가 믿고 기다리면 언젠가 멋진 주가로 화답을 한다는 신뢰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매매는 다르다. 그런 ‘인정’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

프로그램 매매는 차익거래와 비차익거래로 나뉘며, 대개 선물과 현물 가격차를 이용한 차익거래에 좌우된다.

차익거래는 선물과 현물 시장간 가격차이인 베이시스 흐름에 따라 기계적으로 매매가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은 수치상 ‘이젠 아니다’는 신호만 왔다 하면 투자자와 주식의 인연을 칼같이 잘라내 버리는 비정한 메커니즘이다. 프로그램에는 영혼이 없다고나 할까.

이렇게 차가운 프로그램이 요즘 장세를 좌우하고 있다. 사고 파는 이유가 오로지 수치상의 문제라 사줘도 고맙지 않고, 팔아도 욕하기 어려운, 참으로 애매한 상대다.

증시전문가들이 요즘 "프로그램이 주도하는 불확실한 장세"라며 관망하라는 조언을 줄기차게 내놓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영혼이 없는 상대는 직접적으로 맞대응해서 이기기 어렵다. 그저 에너지원이 닳아 스스로 동작을 멈출 때까지 두고 보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