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루이스

인어공주의 고향 덴마크 남서부의 소도시 스트루어에 가면 뱅앤올룹슨 본사 '팜(farm)'이 있다.

전 세계 1%를 위한 83년 전통의 하이엔드 가전 브랜드 '뱅앤올룹슨(B&O)' 제품은 100% 이곳에서 생산돼 60여개국,1317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각광받는 뱅앤올룹슨에서 수석 디자이너는 최고경영자(CEO)보다 더 권위자로 통한다.

20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뱅앤올룹슨 매장에서 30년 넘게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데이비드 루이스 수석디자이너(69)를 만났다.

스트루어 본사가 아닌 코펜하겐 매장에서 만난 이유는,그가 B&O 소속이 아니라 코펜하겐에서 독립적으로 디자인 하우스를 운영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뱅앤올룹슨은 디자이너들의 독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디자이너를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하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루이스 수석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통해 83년째 가전 명품의 명성을 지켜온 비결을 들여다봤다.

◆길고 추운 겨울이 낳은 작품

덴마크의 디자인이 각광받는 이유로 '심플함,실용성,친환경성'을 꼽는다.

북유럽의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덴마크 사람들은 겨우내 머무는 집안 환경에 관심을 쏟았고,기능적이면서 질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었다.

가구 브랜드 '프리츠 한센',그릇 브랜드 '로열 코펜하겐' 등과 함께 B&O는 덴마크식 디자인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브랜드로 평가된다.

루이스 수석디자이너는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B&O의 제품이 사랑받고 있다는 건 전 세계 소비자들이 덴마크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걸 말해준다"며 "어느 공간에나 잘 어울리고 유행을 타지 않으며,사용자의 편의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덴마크 디자인'이자 B&O슨의 디자인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B&O의 심벌이 된 오디오 '베오사운드 9000''베오사운드 3200' 등이 출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치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고정관념을 파괴한 디자인

B&O는 디자인 면에서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숨겨져 있던 CD 플레이어를 밖으로 노출시켜 오디오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렸고,TV는 예술작품을 담은 액자처럼 보이게끔 '가전의 예술화ㆍ고급화'를 선도했다.

B&O가 브랜드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얻은 친근한 디자인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을 내놓는 데 있다.

풍뎅이 모양의 멀티플레이어(베오센터 2),등대를 형상화한 스피커(베오랩 9) 등 루이스 디자이너의 손길에서 탄생한 제품들은 자연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많다.

그는 이런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전시회,박람회를 자주 다니고 다양한 상점들을 둘러보며 제품 디자인의 영감을 찾는다"고 귀띔했다.

벽에 걸지 않아도 그림 액자 같은 디자인 컨셉트의 TV '베오비전 9',오르간 파이프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슬림 스피커 '베오랩 8000',아시아의 전통적인 지붕과 양동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명품 휴대폰 '세린',나뭇잎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베오랩 4000' 등도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B&O는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에 그치지 않는다.

루이스 디자이너는 "독창적인 디자인은 첨단 기술을 보완해 더욱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고 강조했다.

나뭇잎 모양의 '베오랩 4000'은 앞부분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돌출된 독특한 디자인이다.

이는 아름다움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움푹 들어간 뒷부분이 앰프의 과열 현상을 해소해주고,소리의 전달력과 공명성(소리가 울리는 정도)을 뛰어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디자인ㆍ기능ㆍ실용성의 3박자가 전 세계에 B&O 마니아를 만들어낸 비결인 셈이다.

코펜하겐(덴마크)=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