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암 치료 수준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관계가 문제입니다. 신뢰가 있는 사회에서 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일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하는 곳이 미국 사회인 데 비해 한국 환자는 '반(半)의사'여서 자기 판단이나 주위 사람의 의견을 더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치료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암 치료를 시작하는데 한국에서는 안된다는 전제조건을 깔고 들어가니까 훨씬 힘이 듭니다. 촛불집회에서 보듯 신뢰와 질서가 없는 사회는 그만큼 대가를 치릅니다. 암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이진수 신임 국립암센터 원장은 "암은 100% 낫는 질병"이라며 "재임하는 동안 암에 대한 국민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창조적인 사고로 국가 암 관리정책을 펼쳐 보이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 19일 그의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암 치료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미국에서 보낸 삶과 7년여간의 한국 생활을 비교해가며 암과 관련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아울러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대안도 내놓았다.

―원장으로 취임한 소감은.


"전임 원장들이 훌륭하게 일해 기틀을 잡아놨다.

그보다 더 잘하겠다는 게 내 목표다.

창립 7주년을 맞는 국립암센터는 짧은 시간 안에 국민들이 선호하는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는 연구활동과 국가 암 관리사업을 눈에 띄게 강화하겠다.

이를 위해 암 예방과 계몽,암 통계 관리,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사업 등을 확장해나가겠다."

―암 치료 명의로 국민들에게 더 유명하다. 암은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이라고 볼 수 있나.

"암은 100% 낫는 질병이다.

다만 죽어서 낫느냐 가지고 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암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

암을 왜 진단받았다고 하지 않고 암 선고라고 하는가.

몇 개월밖에 못 산다고 말하면 눈물이 글썽글썽한 환자가 숱하다.

그건 평균치인데 왜 자기가 그렇게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나.

과거의 데이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평균을 넘겨 얼마나 오래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은 만성병으로 생각해야 한다.

약이나 수술 경과에 따라 남은 수명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환자는 답답할지 몰라도 생각을 바꿔야 치료가 편해진다."

―인생관이 바뀐다고 암이 더 잘 낫는가.

"치료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메시지가 있다. '암을 치료하면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충고하는 의사와 '좋아지지만 낫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고 치자.최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의사들은 후자처럼 말한다. 내용은 비슷하지만 받아들이는 환자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의사는 환자에게 긍정적인 치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의사 못지않게 환자의 생각도 중요하지 않나.

"여기 계란 쇠고기 양파 마늘이 있다고 치자.똑같은 재료지만 요리사에 따라 고급 음식을 만들 수 있고 값싼 음식이 될 수도 있다. 암 치료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강조하려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적 생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환자가 부정적 메시지에 젖어 있으면 치료가 소용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국내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낮았는데 이 원장이 2001년 한국에 온 후 국립암센터는 물론 국내 전체 의료기관의 암 치료 성적이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2.6%,국립암센터는 병기에 따라 다르지만 12∼14% 정도 된다. 폐암 수술을 받고 5년 이상 생존한 사람은 54.5%이다. 국내 유수의 다른 병원과 대등한 것으로 조금 부풀려져 홍보된 측면이 있지만 미국의 저명한 MD앤더슨암센터와 맞먹는 수준이다. 4기암 환자의 진단 이후 생존 기간은 서구는 8∼10개월인데 국립암센터는 16개월로 생존 기간을 더 연장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암 치료를 받으러 미국에 갈 필요가 없지 않나.

"객관적으로 한국의 치료 수준은 미국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환자와 의사 간에 신뢰가 없어 치료하는 데 힘이 든다. 환자의 기대수준은 높은데 이를 충족시킬 시스템이 안돼 있다. 속칭 '3시간 대기 3분 진료'란 말이 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뭘 설명하겠나. 옷도 안 벗기고 청진기를 대야 할 판이다. 친절하게 20분 이상 설명하면 환자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게 한국의 의료 실정이다."

―MD앤더슨암센터에선 수술 대신 항암제나 방사선 위주로 치료한다고 들었다. 원장의 치료 패턴은.

"폐암 1∼2기는 수술이 가장 좋고,3기는 수술 방사선 항암제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아직도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나의 답을 원하겠지만 그건 진리일 수도 오류일 수도 있다. 암 때문에 수명이 현저히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수술에 들어간다. 수술을 할 수 없거나 수술 뒤에 재발한 암 환자를 주로 치료한다. 폐암 4기는 말기암이 아니다. 4기는 항암제든 방사선이든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다. 말기암은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 효과가 없어서 편히 자연상태로 살다가 죽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4기암과 말기암이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폐암 치료의 최신 트렌드는 무엇인가.

"폐암은 빨리 자라고 전이가 잘 되는 소세포성 폐암(15∼20%)과 비교적 서서히 진행돼 조기 발견하면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비소세포성 폐암(80∼85%)이 있다. 1950∼60년대만 해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모든 암을 잘라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연구 결과 소세포성 폐암은 예후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를 하는 데 비해 비소세포성 폐암을 주로 수술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1∼2기 암만 수술했지만 지금은 3기도 수술한다. 다만 3기암은 5년 생존율이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비슷해서 수술 대신 방사선 또는 항암제 치료로 가고 있다. '이레사'라는 신약이 있는데 비소세포성 폐암 중 선암 환자에게 투여해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선암에 걸린 사람 중 담배를 안 피우던 사람에게 잘 듣는 것으로 돼 있다."

―이달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ASCO(미국임상종양학회) 2008'에 참석해서 느낀 점은.

"신약이 암 환자의 치료 성적을 계속 높이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장사 잘하는데 우리는 구경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약사나 의사 모두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내 제약사들은 복제약을 팔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돈 들어가고 힘드니까 신약 개발을 하지 않는다. 기초연구가 안됐기 때문이라고 탓할 시기는 지났다."

―그렇다면 이 중 암센터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신약 개발에 관한 국가정책은 기초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이행성 연구는 보건복지가족부,제품화는 지식경제부에서 맡아서 하도록 분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암센터의 입장에서 보면 누군가 바통을 넘겨줘야 이행성 연구를 할 텐데 국내서는 협조가 잘 안 된다. 안 넘겨주고 혼자 다 하려고 하는 것이다. 개발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분업을 해야 한다."

―암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정한 10대 암 예방수칙 등을 잘 지키면 된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데도 계속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흡연이 폐암 사망률을 높인다는 사실조차 미국인이 미국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런 것이니 한국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렇다면 미국 사람이 만든 미제총으로 쏘면 사람이 죽고 한국 사람이 만든 한국 총으로 쏘면 죽지 않는가. 꼭 시험해봐야 아는가. 흡연 과음을 일삼는 사람들은 툭하면 스트레스가 암을 만드는 요인이라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데 옳지 않다."

―저선량 CT(컴퓨터단층촬영)를 하고 어떤 검사든 더 자주하면 암을 조기발견하기 쉽지 않을까.

"저선량 CT는 매뉴얼에는 없지만 권장되는 편이다. 대장내시경도 매뉴얼엔 50세 이후 5년 주기로 하라고 되어 있다. 매뉴얼에 따라 하는 게 적정하고 더 자주할 필요는 없다. 자주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90점 이상을 맞았는데도 100점에서 몇점 모자란다고 혼났던 과거 궁핍한 시대의 정신 구조다."

글=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