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전문


삶의 이치를 이렇게 쉬운 말로,명쾌하게 풀어낸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별난 배움도 없이 농사로 평생을 보냈지만 어머니가 무심하게 던지는 말의 의미는 놀랄 만큼 넓고 깊다.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오랜 기간 진심으로,정직하게 대해온 결과일 것이다.

그가 보듬어 안는 것은 식구들뿐만이 아니다.

넘침도 부족함도 없는 그 마음씀은 꽃과 열매,참외,호박에까지 넌지시 가 닿는다.

그동안 나는 누구의 의자가 되었나.

남을 밀어내고 쟁취하고 시위하며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고 서글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생의 바른 길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