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근해 대륙붕 유전과 알래스카 국립 야생동식물보호구역(ANWR) 내 유전 개발 여부가 쟁점이다.
이 쌍둥이 이슈는 1979년 2차 세계 오일쇼크가 터진 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 처음 제기돼 30여년간 이어져온 것이다.
논쟁을 다시 촉발시킨 것은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다. 지난 1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근해 대륙붕 시추 금지 법안의 철폐를 의회에 촉구하면서 찬반 양론은 더욱 갈리는 양상이다.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과 석유개발업체들은 개발에 찬성하는 반면 민주당 의원과 환경보호론자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선후보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선후보도 가세했다.
매케인은 대륙붕 개발에 찬성하고 ANWR 개발에는 반대하는 데 비해 오바마는 모두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연근해와 ANWR에서 석유를 생산함으로써 유가를 안정시키자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개발로 인한 유가 안정 효과보다 환경오염 및 파괴의 재앙이 더 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도 미국이 국내 원유 생산을 늘릴 경우 석유 수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개발 금지된 매장량만 750억배럴
미국 연근해와 ANWR에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석유가 묻혀 있는 것일까.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개발 금지된 지역의 석유 매장량은 약 750억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20%가 넘는 160억∼180억배럴이 미 연근해 대륙붕에 매장돼 있다는 분석이다.
캘리포니아 해역의 추정 매장량은 103억배럴로 최대다.
1960년 국립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된 ANWR는 104억배럴의 석유가 저장돼 있는 '검은 보고(寶庫)'다.
하루 최저 65만배럴에서 최대 145만배럴을 30년간 뽑아올릴 수 있을 것이란 게 미 에너지부의 계산이다.
ANWR의 추정 매장량 104억배럴은 미국이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동시에 미국 내 다른 지역의 공급이 동나더라도 7∼19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페르시아만에서 들여오는 물량(2007년 7억7500만배럴)이 유사시 끊어져도 약 5.5∼15년간 버틸 수 있는 규모다.
미국은 2007년 하루 평균 1001만7000배럴을 수입했다.
지역별로는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 OPEC 국가들로부터 539만4000배럴,아르헨티나 멕시코 캐나다 노르웨이 영국 말레이시아 등 비 OPEC 국가에서 462만3000배럴이다.
연근해 대륙붕과 ANWR 유전 개발시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미 에너지정보국이 지난 5월 알래스카주의 테드 스티브 공화당 상원의원의 요청에 따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NWR 유전 지역을 개발할 경우 국제원유 가격을 배럴당 1.44달러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정보국은 만일 미 의회가 올해 개발을 승인하면 석유를 본격 생산하는 데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2030년이면 ANWR의 신규 생산물량이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0.4∼1.2%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미 에너지정보국은 현 추세라면 2030년 미국의 해외 석유 수입 의존도가 54%에 이르는데 ANWR에서 석유를 생산할 경우 최대 48%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해외 석유 수입비용도 2018∼2030년 사이 총 3270억달러로 1350억달러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미국 내 휘발유 판매가가 갤런(3.78ℓ)당 4달러로 치솟아 서민들의 아우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미국으로서는 연근해 대륙붕 유전과 ANWR 유전 개발은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찬ㆍ반 진영 간 팽팽한 줄다리기
미 연근해 대륙붕 시추금지법(석유개발 유예조치법)은 1981년 카터 전 대통령 정부 때 발효됐다.
1990년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2000년까지 시추를 금지한 데 이어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12년까지 재연장했다.
이 법안의 폐지안을 담은 공화당의 에너지법안이 지난 5월 제출됐으나 56 대 42표로 거부당했다.
현재 시추 불허 지역은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멕시코만 대부분으로 미 연근해 대륙붕의 80%를 넘는다.
ANWR 유전 개발 법안은 1987년,1995년,2000년,2005년 공화당이 제출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1995에는 공화당이 개발비용을 포함한 연방예산 법안을 상정했으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들 지역을 개발하자는 찬성론자들은 미국의 해외 석유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유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현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대표적인 지지자다.
그는 아버지 부시와 달리 2006년 멕시코만 탐사를 확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19일에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많은 미국인들이 휘발유 가격 상승에 큰 압박을 느끼고 있다"며 "의회는 현재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 연근해에서도 석유 시추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의회에 다음 달 4일까지 답변을 주도록 요구했다.
체니 부통령 역시 최근 미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더 이상 (민주당과 환경론자들의) 불평불만을 듣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2009년까지만 연근해 대륙붕 개발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USA투데이는 지난 10일자 사설을 통해 "알래스카 ANWR 시추는 고유가를 일시에 해결하는 즉효약은 아니지만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고 적극적인 개발을 옹호했다.
ANWR가 생산할 수 있는 하루 100만배럴은 미국인들이 하루 사용하는 2100만배럴(중국은 하루 800만배럴)의 5%인 데다,미국의 동맹국인 콜롬비아의 반군 무장세력에 자금을 대줘 눈엣가시 같은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이 수입하는 물량과도 맞먹는다는 점을 내세웠다.
첨단 시추 방식을 활용하면 생태계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반대론자들은 연근해와 ANWR에서 석유를 개발하면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인 해리 라이드 의원은 체니 부통령을 '오일맨 체니'라고 지칭하면서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시추하라고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추가 개발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논리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공공자원을 석유개발업체들에 또 공짜로 던져주느냐"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인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부시 대통령의 친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도 연근해 시추를 대놓고 반대하고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은 ANWR를 개발하면 순록 북극곰 물개 등의 서식지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에너지정보국마저 첨단 채굴 기술이 적용되더라도 시추공을 뚫을 때 사용하는 증기가 ANWR 툰드라 영구동토 지역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적인 석유 고갈에 대비, 미국 내에 매장된 원유를 아껴둬야 한다는 국가 전략 차원의 개발 반대논리도 많다.
이 같은 석유 개발 논란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는 부시 대통령이 의회 답변시한으로 제시한 다음 달 4일쯤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