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

청와대의 수석 참모진들을 전면 교체한 이번 인사가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지는 않다.

감동이 있으려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희생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그게 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름도 없이 전쟁터에서 산화한 무명용사가 국군묘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손가락이나 두 팔을 못쓰게 돼 입과 발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가 사람들로부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이유도 헤아리기가 어렵지 않다.

그것들은 모두 '무한도전'이라고 할 만큼 자기의 능력을 '실현'하는 행위를 넘어서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행위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인사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수족을 자르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은 했을지 모르나,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인재를 구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는 하지 못했다.

역시 자신에게 편한 사람을 찾았기 때문일까.

'남의 사람'을 썼다면,그야말로 감동이 메아리쳤을 터인데….그러나 어쨌든 이번에 새 출발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각오는 남달라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고언(苦言)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에게 복무하는 존재지만,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 논리에 불과할 뿐 실질적 의미에서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 밑에서 맡은 바 임무만을 수행한다는 생각보다는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을 보살핀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험한 바다를 가로 지르는 항해에서 1등 항해사가 무조건 선장이 하라는 대로 해서는 그 배의 전도가 암담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밤중의 뱃길에 정체불명의 위험천만한 물체가 떠있으면 그 정체의 위험여부를 미리 알아내서 반드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지 "별 것 아닐 것"이라는 선장의 안이한 판단만 쫓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십중팔구 타이타닉호의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에나 나올 법한 우화(寓話)가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로부터 비아냥을 받자 어느 용감한 참모가 모처럼 "다음부터는 좀 더 대통령다운 면모를 보이시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되받았다.

"당신은 대통령이 되어 본 적이 있소?" 이 말에 참모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공화국은 대통령의 계속된 기행으로 인해 웃음거리 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 임명된 청와대 참모들은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저는 대통령은 되어 본 적은 없지만,바른 말을 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 민주국가의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참모들이 그보다 군신(君臣) 관계가 훨씬 엄중했던 조선시대의 간관(諫官)이나 내시보다 더 대가 약하고 아부에 능하며 용기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주말을 거치면서 이제 잦아들 만도 하건만 지금도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왜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가.

밝디 밝은 태양 아래서 책을 보기 위해 촛불을 켜는 사람들은 없다.

무엇인가 어두우니까 촛불을 켜는 것이다.

촛불이 꺼지기를 바라거든 적어도 청와대에서는 '태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촛불'보다는 환한 '횃불'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도 이번의 청와대 인사가 감동에 미치지는 못했지만,촛불보다는 더 밝게 국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예스'만이 아니라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