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 한국무역협회 회장 >

지난 4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키로 한 뒤 두 달 가까이 온 나라가 소용돌이쳤다.

급기야는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국민에게 사과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첫째,IT(정보기술) 강국답게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점이다.

당초 시민들은 식품안전이란 고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는 쇠고기를 빌미로 파업을 선동했고 주제와 관계 없는 정책이나 심지어 정권퇴진 논쟁으로 비약시키기도 했다.

더구나 일부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유포되면서 정부와 국민,국민 상호 간에 불신의 벽은 높아졌다.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미국인들도 주로 호주나 뉴질랜드 쇠고기를 먹는다''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한국에 수출하는 것은 다르다'는 등 근거없는 선동이 난무했다.

둘째 시민들이 요구하던 식품안전 목표는 대부분 달성됐다는 점이다.

거슬러 가보면 2003년 12월까지 미국산 쇠고기는 정상적으로 수입됐다.

그러나 워싱턴주의 한 젖소에서 광우병 증세가 나타나자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115개국이 수입을 일시 중단했다.

2006년 9월부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됐으나 일부 컨테이너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자 수입은 다시 중단됐다.

2007년 5월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인정받게 되자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고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무총리 명의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국민건강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미국도 이에 동의했다.

국민들은 정부당국의 성명만으로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해 한·미 양측은 GATT 20조에 따라 국민건강을 위협할 경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서한을 교환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더 분명한 조치를 요구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에 대해서는 업계 간 수출을 자율규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정부가 장관급 추가협상에 나서 21일 쇠고기 수입조건을 강화한 협상 결과가 발표됐다.

셋째 그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에도 불구하고 전체 육류수입은 오히려 늘어났으며 국내 소비자의 후생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2003년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9억달러어치였으나 작년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 수입이 이미 9억달러를 넘었다.

한편 국내 쇠고기 소비자 가격은 한우등심 500g 기준 2003년 평균 1만9000원에서 작년에는 3만3000원으로 올랐다.

사실 쇠고기 수입 재개 방침은 현 정부에서 정한 것이 아니다.

2006년 정부는 이미 쇠고기 수입을 허용했고,2007년 4월에도 쇠고기 수입재개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구촌과 동떨어진 외딴 섬나라가 아니라 복잡한 국제경제질서 속에서 호흡을 하고 있다.

세계 11위 무역국이며 매년 100억달러에 가까운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이 쇠고기는 물론 모든 상품의 수입을 막고 살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시 금모으기 운동으로 나라를 구했듯이 이제는 기업인,근로자,시민,학생 모두가 촛불을 접고 국난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정치인들도 의사당으로 돌아가 산적한 민생과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