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이진수 원장은… MD앤더슨암센터서 이건희 회장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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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 원장은 1999년 12월 당시 폐암 관련 질환을 앓고 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재직 중이던 MD앤더슨암센터에서 직접 치료하면서 국내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 원장은 1950년 전북 익산 용안군 법성리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를 땄다.
돈벌이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1976년부터 2년간 거제보건원 초진소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1979년 최신 의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갔다.
49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암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내과 레지던트로 시작해 1982년부터 세계적 암 치료 병원인 텍사스 의대 MD앤더슨암센터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종양내과 전임강사,흉부 및 두경부종양내과 교수,흉부종양내과 분과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엔 미국 최고 의사(America's Top Doctors)에 올라 미국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창 정점을 향해 내달리던 그는 이 해 국립암센터가 설립되자 초대 원장이었던 서울대 의대 박재갑 교수의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여 2001년 9월 귀국했다.
이후 부속병원장,폐암센터장,연구소장 등 요직을 맡으면서 국내 암 치료 발전에 기여해왔다.
부인 최영균씨와 1남3녀.
이 원장은 1950년 전북 익산 용안군 법성리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를 땄다.
돈벌이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1976년부터 2년간 거제보건원 초진소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1979년 최신 의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갔다.
49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암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내과 레지던트로 시작해 1982년부터 세계적 암 치료 병원인 텍사스 의대 MD앤더슨암센터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종양내과 전임강사,흉부 및 두경부종양내과 교수,흉부종양내과 분과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엔 미국 최고 의사(America's Top Doctors)에 올라 미국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창 정점을 향해 내달리던 그는 이 해 국립암센터가 설립되자 초대 원장이었던 서울대 의대 박재갑 교수의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여 2001년 9월 귀국했다.
이후 부속병원장,폐암센터장,연구소장 등 요직을 맡으면서 국내 암 치료 발전에 기여해왔다.
부인 최영균씨와 1남3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