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자기의 지성을 강화하는 유일한 수단은 편견이 없는 것,마음이 모든 사상을 위한 신작로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편견에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한 지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인문·자연·사회과학 분야의 상반기 우수 도서들은 편견이나 선입견,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열린 지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먼저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필립 짐바르도가 쓴 ≪루시퍼 이펙트≫(웅진지식하우스)를 보자.이 책은 1971년 저자가 실시한 '모의 교도소 실험'을 토대로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저지르도록 전환시키는 상황과 시스템의 영향력인 '루시퍼 이펙트'를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평범한 학생들을 무작위로 수감자와 교도관의 역할로 나눈 다음 실험한 결과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수감자들을 가학적으로 대했고,시간이 갈수록 가학행위가 극에 달해 결국 실험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중단됐다는 것.

이를 통해 저자는 '썩은 사과'(문제 있는 개인)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썩은 상자'(잘못된 상황)의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성격이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상자에 든 역할과 규칙,익명성,비인간화,집단 정체성 등의 복합적 작용이 인성을 변화시킨다는 얘기다.

그러니 겉모습이나 드러난 몇 가지 행동만으로 그 사람의 실체를 규정한다면 얼마나 위험할 것인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매들린 L 반 헤케가 쓴 ≪블라인드 스팟≫(다산초당)은 인간이면 누구나 '블라인드 스팟(맹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블라인드 스팟'은 물체가 분명히 있는데도 비추지 못하는 자동차 옆거울의 사각지대.인간심리에도 자기 모습을 볼 수 없는 맹점이 있어 인간관계에서 실수와 갈등,편견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능에 내재한 맹점을 10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열린 사고와 교육으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다윈,당신 실수한 거야!≫(외르크 치틀라우 지음,뜨인돌)는 '진화론=진리'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진화론의 핵심인 적자생존,자연선택 등을 부인하는 실제 사례들을 증거로 내세운다.

기후가 일정한 하와이 숲 속에서 자라는 220여 종이나 확인된 아카티넬라의 다양성은 자연선택설로 설명하기 어렵고,힘이 세고 목소리가 큰 구성원 대신 친절하고 자기 희생적인 동료를 우두머리로 뽑는 꼬리치레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부인한다.

천재적인 기억술로 유명한 에란 카츠는 ≪슈퍼 기억력의 비밀≫(황금가지)에서 "기억력은 좋거나 나쁘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영역"이라며 "훈련만 하면 누구나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향과 관심에 따라 사람마다 보다 잘 기억하는 분야가 있으며,재미와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는 것.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잘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고 연결고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그가 소개하는 기억력 향상법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논란 속에 더욱 주목받고 있는 《죽음의 밥상》(피터 싱어 외 지음,산책자)은 현대인의 풍성한 식탁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과 고정관념에 메스를 들이댄다.

마트에서 싸게 파는 공장형 농장의 사육 제품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세금 부담과 잔인하게 사육·도축되는 동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며,풍부하게 공급되는 해산물 또한 지구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남획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저자들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크기의 과학》(존 타일러 보너 지음,이끌리오)은 왜 모든 생명체들의 크기가 다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크기가 그들의 힘과 표면적,분업,신체활동 속도,개체수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밝혀낸다.

크기로 인해 생명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저자의 주장은 구조의 변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크기가 변한다고 보았던 과학적 통념을 뒤집는다.

또 중국 최고의 스타 인문학자가 쓴 《이중톈,중국인을 말하다》(은행나무)는 음식,의복,체면,인정,단위(직장),가정,결혼과 연애,우정,한담(잡담) 등의 9가지 키워드로 중국인을 풀이하면서 '만만디' 정도로 알고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