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품업체들이 '메이드 인 아시아(Made in Asia)'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원가 등을 생각하면 아시아 지역의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아시아제 명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커 선뜻 아시아산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성장세가 꾸준한 명품업체들이 아시아 지역 생산을 늘릴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원가가 싼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을 늘릴 경우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원가를 낮추는 장점이 있는 반면 '메이드 인 아시아'라는 표시에 소비자들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아르마니' 매장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을 때 한 소비자가 아르마니 티셔츠 두 장을 들고 찾아와 화를 냈다.

'중국제' 표시가 붙은 티셔츠의 값이 '이탈리아제'라는 표시가 붙은 티셔츠보다 왜 더 비싼지를 따진 것이다.

아르마니 티셔츠는 이탈리아에서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탈리아제' 셔츠는 가짜였다.

진짜인 중국제 티셔츠가 비싼 건 당연했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막연히 '이탈리아제'에 대해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러다 보니 명품업체들은 제품 품질보다도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지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들은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명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대신 유럽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퍼뜨려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제'가 '중국제'보다 결코 낫지 않다.

가방이나 구두에 이탈리아제 라벨이 붙었다고 해도 더 이상 토스카나 작업장에서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작한 제품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들 이탈리아 공장에 가 보면 값싼 임금의 불법 근로자들이 중국산 플라스틱 밑창과 가죽으로 은밀하게 명품을 만들고 있음을 자주 볼 수 있다.

명품업체들로선 내심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 공장을 옮기기를 바라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생산 원가가 싸다 보니 더 좋은 섬유를 사용할 수 있고 기술 개발 실험도 되풀이할 수 있어 궁극적으론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자신들이 자랑하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이 아시아 공장에 상주하면서 제품 품질을 유지할 경우 더 나은 명품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게 명품업체들의 생각이다.

존 후크스 조르지오 아르마니 이사는 "디자이너들이 품질에 세심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한 명품이 세계 어느 곳에서 만들어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이탈리아제와 프랑스제만 고집한다면 가격을 엄청나게 높이지 않는 한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명품업체들의 아시아지역 생산비중은 30%를 웃돌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는 아시아인들이 '메이드 인 아시아'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들은 아시아산 명품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편이다.

반면 아시아 소비자들은 중국산이라는 원산지 표시를 본 순간 명품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보테가 베네타의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 회장은 "아시아 시장에선 중국이나 아시아제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며 "업체들로선 상당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고 토로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