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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호텔과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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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70년대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파견됐었다.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시절이라 대문에는 보통 문패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한글을 겨우 익힌 미국 선교사들이 문패 옆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 "개조심씨 계십니까"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 웃음을 자아냈었다.

    필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십수년 전 주EU대표부 상무관으로 발령받아 벨기에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다.

    벨기에는 경상도만한 크기지만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비즈니스는 영어도 잘 통하는 다언어 국가다.

    차를 빌려 가족과 함께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운전하는데 Rappel(하펠)이란 표지판이 자주 나오고 밑에 30 또는 50㎞라고 쓰여 있었다.

    '하펠시가 꽤 유명한 관광지인가,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 프랑스어로 '주의'를 뜻하는 말이란 사실을 알고 집사람과 배꼽을 잡고 웃었던 적이 있다.

    프랑스를 여행할 때였다.

    숙소를 정하지 않고 여행하는데 해질 무렵이 돼 조그만 도시에 도착했다.

    중심지에 유달리 깨끗해 보이는 호텔이 눈에 띄었다.

    호텔 드 빌(Hotel De Ville)이란 간판을 보고 차를 세웠다.

    하지만 당시 현지 외국인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던 아들로부터 "호텔이 아니라 시청이야"란 말을 듣고 아버지의 체면을 구겨야 했다.

    프랑스어를 조금 배웠다는 아들 녀석에게도 때가 찾아왔다.

    프랑스 식당의 메뉴판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외계문자나 다름없다.

    메인 요리를 내가 주문한 뒤 앙트레(전식) 주문을 아들에게 맡겼는데, 녀석이 자신있게 고른 게 나중에 알고 보니 소의 뇌로 만든 요리였다.

    억지로 먹긴 했지만 아들이 내 눈치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어는 외국인들이 배우기에는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미 국무부는 한국어가 세계 언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언어로 분류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한국인들이 외국어를 배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위상에 비춰 특수언어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벨기에가 2007년 기준으로 외자유치 세계 4위,교역순위 9위를 기록한 힘의 원천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인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영어 조기교육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재를 많이 양성,외국과 협력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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