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소통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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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아들 중에서 가장 재주가 뛰어난 이는 셋째 조식이었다.
조식의 문재(文才)는 출중했다.
그를 총애한 조조가 맏아들 조비를 제쳐 놓고 후사를 이을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맏이인 조비는 그런 동생을 몹시 미워했다.
후계 문제에서도 밀릴 뻔하자 그의 증오와 질투심은 극에 달했다.
조조가 죽은 뒤 제위에 오른 그는 동생을 죽이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혈육을 해쳤다고 비난 받을까 두려워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네 글재주가 좋다고 하니 일곱 걸음 안에 시를 한 수 지어봐라.성공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칙령을 어긴 죄로 처형하겠노라."
이 기막힌 상황에서 조식이 쓴 시가 <칠보시(七步詩)>다.
'콩깎지를 태워 콩을 삶네/ 콩을 걸러 즙을 만드네/ 콩깎지는 가마 밑에서 타는데/ 콩은 가마 안에서 우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서로 볶기를 어찌 그리 급하냐.'
콩과 콩깎지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에 비유하며 형제 간의 골육상쟁을 풍자한 것이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대결적 언어'로 맞섰다면 어찌 됐을까.
지금도 형제 간이나 동족 간의 싸움에 자주 인용되는 이 시는 즉자적인 '날것의 언어'보다 은유와 상징을 녹여낸 '숙성의 언어'가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소통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소통 기술'도 원숙하다.
그는 몇 년 전 유럽 기자단의 질문에 답하면서 고전 명구를 줄줄이 읊조려 화제를 모았다.
천재지변을 당한 국민들을 찾아가 숱하게 눈물을 흘린 그는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긴 한숨 쉬며 남몰래 눈물짓는 건 고통 받는 민생이 애처롭기 때문이라오.' 굴원의 <이소(離騷)>에 나오는 구절이다.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건진 조식과 서민 재상으로 존경받는 원자바오.이들을 살리고 빛낸 것은 인문학적 소양과 잘 익은 '숙성의 언어'였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는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질학을 전공한 이학도였지만 고전에 통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체 공부시간의 반은 전공 과목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고전을 읽는 데 썼다고 그는 술회했다.
매일 텅 빈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고 밤늦게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책에 파묻혔다가 마지막으로 불을 껐다.
그래서 남다른 '소통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넘치고 넘치는 '인터넷 언어'와 '얄팍한 지식',몰아붙이기식의 폭언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진정한 소통은 일방적인 전달이나 대안 없는 되받아치기가 아니다.
이미 동서고금의 수많은 고전과 명구들이 다 알려준 교훈인데도 지금 우리는 '삿대질 어법'으로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다.
민생경제,교육.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설익은 '날것의 언어'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행정부도,국회도 서투르기 짝이 없다.
우리 모두 한 뿌리에서 난 '콩'과 '콩깎지'가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기술'을 익혀야 할 때다.
kdh@hankyung.com
조식의 문재(文才)는 출중했다.
그를 총애한 조조가 맏아들 조비를 제쳐 놓고 후사를 이을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맏이인 조비는 그런 동생을 몹시 미워했다.
후계 문제에서도 밀릴 뻔하자 그의 증오와 질투심은 극에 달했다.
조조가 죽은 뒤 제위에 오른 그는 동생을 죽이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혈육을 해쳤다고 비난 받을까 두려워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네 글재주가 좋다고 하니 일곱 걸음 안에 시를 한 수 지어봐라.성공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칙령을 어긴 죄로 처형하겠노라."
이 기막힌 상황에서 조식이 쓴 시가 <칠보시(七步詩)>다.
'콩깎지를 태워 콩을 삶네/ 콩을 걸러 즙을 만드네/ 콩깎지는 가마 밑에서 타는데/ 콩은 가마 안에서 우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서로 볶기를 어찌 그리 급하냐.'
콩과 콩깎지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에 비유하며 형제 간의 골육상쟁을 풍자한 것이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대결적 언어'로 맞섰다면 어찌 됐을까.
지금도 형제 간이나 동족 간의 싸움에 자주 인용되는 이 시는 즉자적인 '날것의 언어'보다 은유와 상징을 녹여낸 '숙성의 언어'가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소통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소통 기술'도 원숙하다.
그는 몇 년 전 유럽 기자단의 질문에 답하면서 고전 명구를 줄줄이 읊조려 화제를 모았다.
천재지변을 당한 국민들을 찾아가 숱하게 눈물을 흘린 그는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긴 한숨 쉬며 남몰래 눈물짓는 건 고통 받는 민생이 애처롭기 때문이라오.' 굴원의 <이소(離騷)>에 나오는 구절이다.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건진 조식과 서민 재상으로 존경받는 원자바오.이들을 살리고 빛낸 것은 인문학적 소양과 잘 익은 '숙성의 언어'였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는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질학을 전공한 이학도였지만 고전에 통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체 공부시간의 반은 전공 과목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고전을 읽는 데 썼다고 그는 술회했다.
매일 텅 빈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고 밤늦게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책에 파묻혔다가 마지막으로 불을 껐다.
그래서 남다른 '소통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넘치고 넘치는 '인터넷 언어'와 '얄팍한 지식',몰아붙이기식의 폭언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진정한 소통은 일방적인 전달이나 대안 없는 되받아치기가 아니다.
이미 동서고금의 수많은 고전과 명구들이 다 알려준 교훈인데도 지금 우리는 '삿대질 어법'으로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다.
민생경제,교육.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설익은 '날것의 언어'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행정부도,국회도 서투르기 짝이 없다.
우리 모두 한 뿌리에서 난 '콩'과 '콩깎지'가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기술'을 익혀야 할 때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