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외환카드 주가 조작 관련 2심 재판에서 1심 판결을 뒤집는 '론스타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외환은행이 곧바로 HSBC 품에 안기는 것은 아니다.

키를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가 "아직 사법절차가 남아 있다"며 승인 여부를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어서다.

금융위는 게다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재판과 관련해선 입장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HSBC와 론스타는 7월 말까지로 연장해 놓은 외환은행 매매계약을 중도에 파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은 상황이다.

외환은행에선 금융위가 판단을 미루는 바람에 은행 경영 정상화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 "매각 승인 검토 않는다"

금융위는 24일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과 관련해 (론스타에) 무죄가 선고됐으나 검찰의 상고 여부 등이 확정되지 않아 아직 사법적 절차가 남아 있는 상태"라며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현 시점에서는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제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유재훈 금융위 대변인은 이와 관련,"검찰이 상고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아직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며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려면 대법원 판결까지 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재판 등에 대해선 "제반 환경 변화를 종합 검토해 적절한 시점에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덧붙였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상당기간 HSBC의 외환은행 승인 여부를 검토하기 힘들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재판은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인데 당국이 분명한 신호를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전 위원장은 5일엔 "국민정서를 감안해 충분한 공감을 얻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금융위가 외환은행의 주인으로 HSBC를 못마땅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금융위가 판단 유보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법적 불확실성이 모두 해소되는 데는 길게는 3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외환은행은 어디로

HSBC는 론스타가 갖고 있는 외환은행 지분 51.02%의 매매 시한을 당초 4월 말에서 7월 말로 석 달 연장했다.

이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2심 판결에 따라 이 기간 내에 외환은행 인수가 마무리되길 기대한 조치다.

그러나 전 위원장이 촛불집회를 계기로 '국정정서'를 언급한 데다,금융위가 공식적으로 "사법절차가 더 남았다"고 밝힘에 따라 희망이 다소 꺾이는 분위기다.

사모펀드로 주주들에게 투자금과 이익을 돌려줘야 하는 론스타 역시 금융위 승인이 상당기간 늦춰지는 마당에 HSBC와의 계약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론스타와 HSBC 간 계약은 파기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론스타는 HSBC와의 계약이 파기되면 블록세일(분할 매각)에 나설 것으로 국내 금융계는 예상하고 있다.

지분을 10% 미만으로 쪼개 팔면 금융위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51.02%를 통째로 파는 것에 비해 매각단가는 낮아지겠지만 빨리 팔고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떠오르고 있다.

이럴 경우 국내 은행 간 치열한 지분 인수 경쟁이 예상된다.

박준동/정재형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