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 예당아트TV 대표·가수 sungsooc@yedang.co.kr >

골퍼들이 꿈꾸는 그런 홀인원은 아니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뿌옇게 낀 날씨. "이쪽 방향이에요." 캐디의 방향 지시에 따라 쳤는데 너무 오른쪽으로 치지 않았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린에 갔는데 공이 보이지 않았다.

캐디와 함께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런 와중에 동반자가 홀컵 안에서 공을 발견하고 "홀인원!"이라며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작 내 속내는 찜찜했지만 동반자들은 전율이 흐른다며 축하해줬다.

내 홀인원은 이렇게 안갯속에서 만들어졌다.

그것도 아내 대신 여자골퍼 세분을 모시고 대타 라운딩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 홀인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일이다.

미국으로 공연을 가기 10일 전 서울 삼각지 곱창구이집에서 차돌박이를 먹을 때였다.

식탁 가운데를 향해 주욱 늘어져있는 환기통이 고장으로 내 바로 앞 숯불 위로 떨어졌다.

그 안에는 잔뜩 기름이 껴 있었는데,순식간에 불이 붙더니 천장으로 타오르며 2층까지 번졌다.

급기야 소방차까지 출동해 온통 물을 뒤집어 썼다.

이유야 어쨌든 내 앞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미안했다.

그후 미국 LA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했다.

분명 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내 눈을 의심했다.

순간 그때 그 불이 가져다준 행운이란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홀인원을 하고도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미국 사람들과 합류해 경기를 했는데,동반자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들떴던 기분이 금세 사그라졌다.

어쨌거나 홀인원을 한 후에 중요한 것을 배웠다.

스코어가 엉망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번 잘쳤다고 흥분하다 더블보기,트리플보기를 저질렀다.

골프가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행운과 불행은 늘 같이 다닌다고 하지 않았던가.

좋은일 다음에는 더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웠다.

홀인원을 한 이날 동반자들은 아내를 불러 축하파티를 해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못이기는 척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심 자랑하고픈 기분으로 "여보 나 홀인원했어"라고 말 했더니 "웬 홀인원이에요"라며 대답이 시큰둥했다.

홀인원하면 행운이 3년은 따라다니고,홀인원을 기록한 골퍼의 손만 만져도 1년은 재수가 좋다는데도 말이다.

하긴 홀인원하면 기둥뿌리 흔들린다는데,그래서 인가.

그럴줄 알았으면 홀인원 보험이라도 들어둘 걸….

두달 전 시작한 칼럼이 오늘 마지막이다.

내 홀인원 행운을 그동안 졸고를 읽어준 독자분들께 퍼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