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7일,메리츠화재는 제일화재 대주주인 김영혜씨에게 "보유 지분 20.68%를 우리에게 팔아라.그렇지 않으면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빼앗겠다"며 협박했다.

비밀리에 제일화재 지분 10%가량을 매집한 메리츠화재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손보업계는 대형화를 위한 시장자율적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며 그 결과에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그로부터 두 달여 후인 지난 24일.메리츠화재는 "제일화재에 대한 공개매수를 포함해 M&A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한화그룹이 '백기사'로 등장하면서 김씨를 포함한 범 한화 측 지분이 47.18%에 달해 공개매수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메리츠화재가 M&A 포기를 선언하자 보험업계와 M&A 전문가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유대관계가 돈독한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욕은 욕대로 먹고 얻은 것은 없고…"라며 다소 고소하다는 반응이다.

선진 자본시장에서 보편화돼 있는 적대적 M&A가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모르게 상도의에 어긋나는 거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방증이다.

증권가의 M&A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전문가는 "자본시장에서 이뤄지는 딜(deal) 가운데 가장 치밀해야 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전략까지 마련해 놓아야 하는 것이 적대적 M&A인데 메리츠는 상대방의 일격에 스스로 항복한 특이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메리츠화재가 실패한 주된 원인은 당초 전략을 짤 때 한화그룹이 백기사로 나서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화 계열사들이 일제히 제일화재 지분 매입에 나서자 메리츠 측이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메리츠화재는 이번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삼을 수 있지만 제일화재 임직원들은 두 달여 동안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졸지에 한화그룹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제일화재 메리츠화재 등 관련 주식이 요동을 치면서 주식투자자들도 적지 않는 피해를 봤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밑져봤자 본전이요,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의 나쁜 전례를 남긴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장진모 경제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