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FM 대행진'의 진행자 황정민 아나운서가 26일 방송 도중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에 많이 실망스러웠다"고 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운영하는 자유 토론방 아고라엔 "KBS는 황정민의 입을 봉하라","아메바같은 생각을 가지고 촛불집회를 논하지 마시길,스스로 퇴출하시오" 같은 인신 공격성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황씨는 방송 직후 "의도가 잘못 전해진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엔 방송인 정선희씨가 비슷한 발언을 했다가 고정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 3개를 그만두는 곤경을 겪었다.

촛불시위가 사그라들 줄 모르는 가운데 시위 참가 및 동조자들의 분위기는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이들의 언어폭력이 무서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명백한 피해를 당하면서도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A호텔은 연일 이어지는 촛불 시위로 두 달 가까이 영업 차질을 빚고 있지만 항의조차 못하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 쪽에 항의해봤냐는 질문에 호텔 관계자는 "무서워서 어떻게 말을 하냐"고 되물었다.

특정 신문에 대한 광고 중단 압박을 받고 있는 한 기업체의 임원은 최근 "이럴 땐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만든 사이버 공간의 최대 장점은 백가쟁명(百家爭鳴)과 같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촛불 시위자들이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요즘 사이버 공간엔 '내 편'과 '네 편'의 편가름이 무성하고,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가 판친다.

소수 의견의 존중과 같은 도덕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당장은 혼돈스럽게 보이지만,궁극적으론 인터넷의 집단 지성이 자정 효과를 낸다"(민경배 경희대학교 NGO학과 교수)는 이야기도 있지만,무수하게 쏟아지는 댓글 폭력으로 상처입는 사람들을 되돌려놓지는 못한다.

네티즌들의 성숙한 토론문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가 서둘러 마련되지 않는 한 '집단 지성'이란 게 언어의 유희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