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생겨나는 건 우신(愚神) 덕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의 결점을 판별하고 연령과 교육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채 감시하듯 들여다보면 우정은 유지될 수 없다.

상대가 누구든 인연을 맺었으면 무조건 아름답게 보고 좋아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인생을 즐겁게 하고 유대를 강화시켜준다.

에라스무스 로테르담(1466~1536)의 '우신예찬'중 한 대목이다.

에라스무스는 신학자이자 문법학자 겸 작가였다.

신부였으나 평생 사제복을 입지 않았고 26세 때 수도원을 빠져나온 뒤 다신 돌아가지 않았다.

교회에서 미사를 올리는 대신 방대한 독서와 여행,집필에 몰두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으로서 권위주의적인 모든 것에 항거했던 그는 공허한 논쟁과 위선 및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의 불합리함에 가슴 아파했다.

'우신예찬'은 그런 안타까움과 사물에 대한 통찰의 결과다.

그는 우정과 애정은 물론 터득하긴 어려운데 알아주는 사람은 적은 참된 예술과 지적 탐구도 우신 때문에 가능하다고 여겼다.

사랑과 학문,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 모두 착각 환상 도취 명예욕같은 광기와 어리석음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이성이 배제된 광기와 어리석음이 만들어내는 무질서와 파괴의 힘도 봤다.

중립이 범죄로 치부되는 시대에 그는 이성의 힘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에 절망했다.

'지혜는 이성,광우(狂愚)는 정열에 이끌린다.

이성은 머리 한쪽에,정열은 나머지 몸 전체에 들었다.

그러니 둘의 싸움에서 이성은 늘 진다.

'그럼에도 불구,그는 이성과 합리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너그러움이야말로 갈등을 약화시키고 혼란을 수습하고 찢어진 것을 봉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통계와 확률을 무시한 광우병 논란으로 몇 달째 온 나라가 어지럽다.

국제금융 위기와 기름값 인상으로 가뜩이나 살기 힘든데 '미친 소'에 매달려 다른 건 안중에 없는 이들이 너무 많다.

분노와 교만,정념에서 벗어나 선을 지향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던 에라스무스가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