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6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 절차에 착수함으로써 북한은 '악의 축'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상 국가'로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1987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공중폭파 사건을 이유로 이듬해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지 20년 만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서 제출 직후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즉각 착수했으며,북한에 적용해온 적성국 교역법을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美, 北테러지원국 해제 착수 ‥ 북한 경제 '20년 족쇄' 풀린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에 행사해온 적성국 교역법을 미 동부시간으로 6월27일 오전 0시1분부터 종료한다고 공표했다.

그는 "대북 적성국 교역법 등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더이상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또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폐지선언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하고,권한을 위임했다.

이로써 미국과 북한은 27일부터 정상적인 교역을 재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테러 지원국 해제 조치를 밝힌 데 이어 즉각 적성국 교역법 폐지 조치를 내려 북한에 적극적인 화해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외교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핵신고에 대한 검증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북한이 최종적으로 테러지원국에서 빠질 경우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는 본격적으로 풀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은 수출관리법 및 수출관리규정에 따라 군수물자 외에도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수 있는 민수용 품목(상품,기술,소프트웨어 포함)의 대북 수출에 대해서도 미국산 요소가 최종가격에 10% 이상 포함된 경우 재수출로 간주,자국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에 대해서까지 미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통제하고 있다.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면 재수출로 간주하는 기준인 미국산 요소의 비율이 25%로 상향 조정돼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의 대북 수출과 투자 제한이 상당히 완화된다.

이에 따라 남북 경제협력에서 큰 걸림돌인 컴퓨터 등 전략물자의 북송 문제도 완화돼 개성공단 등지로의 설비 반출이 쉬워지고 경협 환경도 개선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자연 북한의 대외경제 환경이 개선돼 만성적인 경제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에 대한 미국의 다른 제재조치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만으로 단기간에 북한의 경제가 나아질 수는 없지만 북한의 대내외 경제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북·미관계의 정상화 과정에서 교역과 금융거래,국제금융기구의 지원,경협 확대 등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 후 국제기구의 의무사항을 준수할 의사를 밝힌다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금융기구의 가입도 쉬워진다.

북한 김일성대 교수 출신인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테러지원국 해제는 당장 중국,러시아 등 북한이 거래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쌍무적인 경제관계를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며 "북한의 경제 여건을 활용하려는 외국 기업들의 투자로 북한 내부 산업의 활성화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함께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로 북한은 3170만달러로 미 의회조사국(CRS)이 추정하는 자신들의 미국 내 동결자산을 되찾을 수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