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파리지앵',뉴욕에 사는 이들을 '뉴요커'라 부르는 것처럼 경기도 분당에 사는 사람들을 '분당리언'이라고 한다.

이런 명칭은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생활수준과 맞물려 문화적 공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넉넉한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그에 맞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여가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것이다.

높은 럭셔리 주상복합 건물들과 고르기도 힘들 정도로 날로 늘어 가는 레스토랑들,예쁘게 지어진 빌라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분당은 특히 20~4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남편 앤디씨가 바쁠 때면 딸 하나와 종종 가는 곳이 바로 분당이다.

딱히 멀리 가기도 귀찮고 서울에서의 대중교통 이용도 수월해 반나절 후딱 보내기엔 안성맞춤.게다가 하나가 아직은 어리지만 그래도 여자들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이것저것 사먹어 가며 윈도 쇼핑을 하곤 한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다 보면 열 살짜리 하나는 으레 놀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옮기자고 징징거리는 소리로 시위를 한다.

다행히 분당에는 녹지시설이 많고,잘 알려진 공원들도 꽤 있는 편이다.

그 중 율동공원은 아기자기한 자연의 멋이 잘 살아 있으며 너무 방대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자주 찾게 되는 곳이다.

고운 모래를 깔고 알록달록하게 꾸며 놓은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발을 담그며 놀 수 있는 개울과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공간들도 있다.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는 자전거를 대여해 약간의 운동 효과도 즐기고,아니면 좀 더 과감하게 호숫가에 위치한 번지 점프를 시도해 봐도 좋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호수를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모녀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운동의 효과는 늘 뱃속의 '꼬로록 시계'로 나타난다.

패밀리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카페까지 선택할 대상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삼겹살로 결정한다.

정자동 카페거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위치에 있는 '방짜 삼겹살'(031-711-4050) 식당은 말 그대로 방짜를 불판으로 사용하는 데 그 특색이 있다.

품질이 좋은 놋쇠를 부어 낸 다음 다시 두드려서 만든 놋그릇을 흔히 방짜라고 하는데,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는 표시로 그릇의 밑바닥에 '방(方)'자가 찍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유해한 독성물질이 닿으면 색이 변한다는 방짜유기는 예로부터 왕의 수라상을 비롯 좋은 음식을 숙성시키거나 내는 데 사용됐다.

게다가 열 전도율이 높아 고기가 금세 익으면서도 기름기가 좍 빠져,바삭한 고기를 맛보게 해준다.

운동 효과를 무너뜨리지 않고 고기를,그것도 삼겹살을 즐길 수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져 약간의 안도감이 든다.

이 식당에서 쓰는 방짜유기 불판은 얼핏 보면 커다란 불고기 불판 같다.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를 굽고,공기밥을 시키면 서비스로 제공하는 김치찌개를 불판의 움푹 팬 가장자리에 담아 동시에 고기와 찌개를 맛볼 수 있다.

한우 생등심과 꽃등심도 있지만 놋쇠 불판에는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가 안성맞춤.삼겹살(1인분 9000원)이나 항정살(1만1000원)로 불판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고 김치찌개와도 잘 맞는다.

식사 메뉴도 맛깔스럽고 다양한데,제공되는 밑반찬만으로도 훌륭하다.

위에 부담 없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묵 사발을 큰 대접에 담아 내주고,실한 계란찜과 여름 입맛을 살려 주는 장아찌 등 세 가지가 으뜸 반찬이다.

고기를 다 먹고 도자기에 볶아 즐기는 볶음밥도 독특하다.

불 향이 살짝 감도는 삼겹살과 잘 익은 김치찌개의 맛을 동시에 잡아 주는 와인으로는 호주산 '더 스텀프 점프(The stump Jump)'가 알맞지 않을까 싶다.

그르나슈(grenache),쉬라즈(shiraz),무르베드르(mourvedre) 등 남 프랑스의 적포도 세 가지 품종이 블렌딩된 레드와인으로,강한 루비 색상에 캐러멜향이 진하게 풍기는 와인이다.

약간의 산도와 부드럽게 감도는 타닌,뒤끝으로 감지되는 알싸한 스파이스와 탄 듯한 블루베리 잼의 조합이,불 향이 짙고 김치나 장과 곁들이는 고기를 즐길 때 안성맞춤이다.

여름 저녁,바비큐를 즐길 때 함께하기 좋은 와인이다.

식사 후,조금 걸어 정자동 카페거리로 나서면 맛난 디저트를 탐닉할 곳들이 즐비하니,딸아이와 나눈 하루를 달콤하게 마무리한다.

음식 문화 컨설턴트 toptable22@naver.com <사진=김진화 푸드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