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8일 경제장관회의에서 2단계로 고유가 비상대책(Contingency Plan)을 마련키로 결정한 것은 이미 국제유가 폭등에 따른 전방위적 충격이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유가 비상대책은 2003년 초 이라크 전쟁 당시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배럴당 30달러대로 올랐을 때 수립된 이후 5년만에 전면적으로 정비된다.

정부는 2005년 이후 국제유가의 급등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으며 이에 따라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30달러대에서 지금의 135달러로 오를때까지 비상조치를 가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유가 150달러(서부텍사스 중질유 기준)가 가시권에 들어왔고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면서 비상조치를 전면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다만 정부는 유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수급차질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달리 에너지절약에 주력하기로 했다.

또 일괄적인 세금인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혜택이 크다는 판단에따라 재정 지원도 서민과 중소기업에 한정할 방침이다.

◇ 에너지 소비절약에 중점
29일 정부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재정비한 고유가 비상조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을 기준으로 배럴당 150달러와 170달러 등 2단계로 나누고 단계별로 수급여건을 반영해 모두 4가지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정부는 유가가 170달러를 넘기고 수급도 차질을 빚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는 지역난방 제한공급이나 비축유 방출, 전력 제한송전 등 고강도 대책을 검토할 수 있지만 현재 고유가 상황은 수급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에너지절약에 비상조치의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유가 급등만으로 민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유가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시켜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1단계 비상조치에서는 자율적 소비절약을 권고키로 했다.

다만 유가가 170달러로 급등하면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성장률 추락 등 거시경제지표의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들에게 강제적 절약을 요구할 방침이다.

따라서 이번 비상조치는 5년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수급차질에 대비해 마련된 비상조치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당시에 만든 비상조치는 1단계로 전쟁 초기 유가가 급등할 경우 유류세를 인하하며 2단계로 국지적 수급차질이 생길 경우 놀이공원과 위락시설의 에너지 공급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며 전반적인 수급차질이 빚어지는 3단계에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키로 했다.

그러나 유가가 이라크 전쟁 당시에 비해 4.5배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에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으며 원유 관세도 현재 1%에 불과해 추가 인하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입장이다.

◇ 각국의 고유가 대책
중국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가격을 통제해왔으나 시장왜곡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19일 가격을 전격적으로 올리는 등 세계 각국도 고유가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 외에도 인도와 인도네시아,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유가보조금 삭감을 단행했다.

이는 과거 고유가 상황에 세금을 낮췄던 것과 대비된다.

선진국도 최근 고유가 상황은 구조적 문제로 과거 일시적인 수급차질에 따른 가격급등과 다르다는 점에서 세금 인하 대신 에너지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달 초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며 에너지효율성 개선과 소비억제,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의 대책을 주친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선진국들도 유류세 인하는 바람직한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합의했다"며 "유류세와 관세의 인하는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 정부 하반기 유가 120달러 전망
정부는 2단계 비상대책을 마련하면서 하반기 국제유가 수준을 두바이유 기준으로 평균 120달러로 전망해 연간 110달러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27일 열린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에서 도출된 전망치다.

협의회는 최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산유국-소비국회의와 미국 의회의 원유선물시장 투기자금에 대한 규제 움직임 등을 점검한 결과 지난달에 제시한 전망치를 수정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협의회의 전망치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제시한 하반기 평균 배럴당 107달러, 연평균 105달러에 비해 높다.

정부는 통상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망을 채택했으나 올해 하반기에는 협의회의 전망을 인용키로 했다.

이처럼 정부는 하반기 유가가 비상조치에 들어갈 정도로 오를 것으로 예상하지 않고 있지만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6~24개월 안에 유가가 150~20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최한 간담회에 참가한 주요 연구기관장들은 고유가 시대가 도래해 과거의 저유가 시대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방향도 이에 맞춰 전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박용주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