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항공업계가 고유가의 난기류에 휩싸여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항공업계에선 "9·11테러 때보다 더 어렵다"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항공사들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합병과 전략적 제휴에 나서는 한편 대대적인 노선과 인원 감축 등 생존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3월 미국ㆍ유럽연합(EU) 간 항공자유화(오픈 스카이) 협정이 발효,미국과 유럽 항공사들이 양 지역 내 원하는 도시에 자유롭게 취항할 수 있게 되는 등 전 세계 하늘이 '단일시장'으로 바뀌어가면서 항공업계 재편 바람이 거세다.
[Global Issue] 고유가 직격탄 … 격변의 항공업계
◆미 항공사 '합종연횡'으로 돌파구

2001년 9·11사태 후 수입 감소와 이에 따른 경영난으로 대부분 파산보호(일종의 법정관리)를 거쳤던 미국 항공사들은 고유가로 인해 또 한 차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항공업계 리서치업체인 에어라인포캐스츠에 따르면 배럴당 130달러의 유가는 항공사들의 비용 부담을 연간 300억달러 증가시키지만 요금 인상 등으로 보전할 수 있는 금액은 40억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항공기 연료로 사용되는 제트유 가격은 지난 1년 새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미국항공운송협회(ATA)는 주요 항공사들의 올 손실액이 9·11 테러 여파로 최악이던 2002년과 비슷한 100억달러(10조4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 항공사들은 생존을 위해 합병이나 제휴 등 '짝짓기'에 나서고 있다.

중복 노선을 없애고 고객 수를 늘려 수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2위인 UAL그룹의 자회사 유나이티드항공과 5위 항공사인 컨티넨탈항공은 지난 25일 노선과 마일리지 서비스 등을 공유하는 포괄적 제휴를 공식 선언했다.

양사는 당초 합병을 추진했지만 유가 급등에 따른 막대한 손실 등으로 여건이 여의치 않자 전략적인 제휴 수준에서 손을 잡기로 했다.

컨티넨탈항공은 이번 제휴로 기존 항공사 연합체인 '스카이팀'을 탈퇴,유나이티드항공이 속한 경쟁 연합체인 '스타 얼라이언스'에 합류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항공업계의 제휴 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미 3위의 델타항공과 6위의 노스웨스트 항공이 합병을 발표했다.

양사가 합쳐지면 80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전 세계 67개국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 항공사가 탄생한다.

양사는 합병을 발표하면서 "비용 절감과 수익 확대로 연간 10억달러의 이득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인력ㆍ노선 감축 등 자구책

자체 구조조정을 통한 생존 몸부림도 처절하다.

한때 유나이티드항공과의 합병을 모색했던 US에어웨이스는 계획이 무산된 후 전체 직원의 5%에 해당하는 1700여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4분기에 주요 국내선을 6~8% 줄이고 요금도 15%가량 인상할 예정이다.

컨티넨탈항공은 여름 성수기가 끝난 후 노선을 40편 이상 줄이고 직원 3000명을 감원키로 했다.

델타항공 역시 직원 3000여명을 줄일 계획이다.

미국항공운송협회는 연말까지 미국 100개 지역에서 정기적인 항공편이 없어지고 내년에는 그 수가 200곳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항공료 인상과 함께 각종 '공짜' 기내 서비스도 사라지고 있다.

아메리칸항공이 지난 5월 말 승객들의 수하물 1개당 15달러씩 추가 요금을 받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유나이티드항공과 US에어웨이스도 이에 동참했다.

짐이 많아져 항공기가 무거워지면 그만큼 연료 소비가 많기 때문이다.

US에어웨이스는 8월부터 그동안 무료로 제공하던 음료나 커피에 2달러를 받고,2달러에 팔던 알코올 음료값도 7달러로 올리기로 했다.

'가격'으로 승부하는 저가 항공사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운 특화 항공사도 곤란을 겪긴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제트블루는 가격 경쟁력 약화를 무릅쓰고 요금 인상에 나섰다.

제트블루는 또 최근 에어버스에 주문한 A320 항공기 21대의 인도 시기를 최대 6년 늦추는 등 비용 절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 계열사인 저가 항공사 테드는 아예 문을 닫았다.

전 좌석 비즈니스 클래스화를 선언했던 영국의 실버제트도 수지가 맞지 않아 운항을 중단키로 했다.

◆유럽ㆍ중동 항공사는 '공격경영'

고유가로 항공업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각에선 국제 항공노선 자유화 등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과 EU 간 오픈 스카이 협정이 공식 발효된 것을 계기로 독일 최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가 미국 저가 항공사인 제트블루에 19% 지분 투자를 했다.

영국의 브리티시에어웨이스(BA)는 최근 자회사인 오픈스카이스를 설립,프랑스 파리의 오를리 공항과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을 연결하는 노선을 개설했다.

오픈 스카이 협정 이전에는 EU 항공사들이 자국 이외의 도시에선 미국으로 취항할 수 없었다.

미국과 EU는 지난달부터 투자장벽을 낮추고 국내선 개방까지 허용하는 2단계 항공자유화 협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아시아에선 중국 항공사에 대한 자본 참여 움직임이 활발하다.

싱가포르항공이 지난해 상하이에 거점을 둔 중국 동방항공의 지분 24%를 인수했으며 다른 외국 항공사들도 중국 항공사에 자본 참여를 추진 중이다.

오일 달러 수혜를 입고 있는 중동 국가의 국영 항공사들도 공격적인 영업 확대에 나섰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오는 8월부터 두바이~뉴욕 노선에 세계 최대 항공기인 A380기를 띄우고,조만간 A380기 5대를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유로화 강세로 유가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유럽 항공사들도 아시아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유럽 항공사로는 처음 최근 인천을 경유하는 중국 선양 노선을 취항했다.

이달 3일부터 인천공항에 취항한 핀란드 국적 항공사 핀에어도 아시아지역 노선 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미국 항공사 중에서도 항공유가 급등을 내다보고 이를 미리 헤지한 덕분에 유일하게 순익을 내고 있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올해 최대 10대의 항공기를 교체하고 내년까지 14대를 새로 들여올 계획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게리 켈리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고유가는 9·11테러,경기침체,미국 공항의 보안심사 강화와 심각한 적체 등 근 10년간 항공업계가 겪고 있는 난항의 정점"이라며 "그렇지만 항공여행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서비스 등이 개선되면 승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