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ㆍ중소기업 간 공동기술 개발을 통해 판로를 개척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가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이 중기의 판로 개척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은 정부와 공공기관,대기업 등이 직접 구매할 목적으로 중소기업에 신기술 제품개발 비용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정부가 총 사업비의 55% 이내를 지원하고 대기업은 20%,중소기업은 25%를 부담한다.

한국경제신문사는 대ㆍ중소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상생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례를 찾아 소개한다.

공작기계 판매 시장에서 부동의 국내 1위인 두산인프라코어.이 같은 두산도 2005년,2006년 연속 10인치 규모의 선반 판매에서 자사 모델인 'CT300'이 경쟁사 제품에 밀리는 바람에 2위가 됐다.

절삭력이 강화된 신제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자체적으로 개발,생산할 상황은 아니었다.

원가부담이 큰 데다 여러 품목의 개발을 추진하는 통에 해당 제품 개발에 투입할 인력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을 활용키로 했다.

이미 CT300을 조립해온 데다 공작기계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세양정공에 "신제품을 개발한 뒤 납품하면 판매는 두산이 맡겠다"며 협력을 제안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공작기계ㆍ조선기자재 생산업체인 세양은 안정적인 판매망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적은 비용으로 신제품 개발에 나설 수 있어 흔쾌히 수락했다.

2006년 4월 협력사업이 시작된 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2007년 2월 시제품이 개발됐다.

그런데 출시를 두어 달 앞둔 시점,돌발변수가 발생했다.

그해 4월 두산이 '공작기계 디자인 이노베이션' 방침에 따라 모든 생산품의 외관과 디자인을 바꾸기로 결정하면서 불똥이 튄 것.시제품이 기존 제품과 디자인에서 획기적인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당시 두산은 해외 바이어 등이 참석하는 '구매기업 전시회(DIMF)'를 5월 중 개최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두산은 그때까지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 신제품 개발을 요구했다.

유병현 세양정공 대표는 "다 만들어 놓은 완성품을 다시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당황했다"며 "임직원들이 불철주야 매달린 끝에 납기에 맞춰 두산이 요구하는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전시회에서 세양이 개발한 신제품 선반(PUMA280)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유 대표는 "당초 연간 150대를 두산에 납품할 계획이었지만 전시회 참가 이후 6개월 만에 200개의 주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두산도 작년 5월부터 이달 초까지 PUMA280을 800여대 팔아 4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0인치 선반시장에서 1위를 탈환한 것은 물론 세계 선반시장에서 4위권을 굳건히 유지하는 발판이 되었다.

강동호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기업이 직접 제품을 개발할 경우 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다"며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은 대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중소기업과의 상호 협력도 도모하는 제도"라고 평가했다.

유 대표도 "중소기업이 좋은 제품을 내놓아도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장되는 사례가 숱하다"며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에 참여하면 납품 걱정없이 신제품 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원=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