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얏트호텔 이승걸 이사 "나무 한그루도 직접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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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얏트호텔 이승걸 이사 "클린턴 방한 직전 보일러 터져 식은땀"
"직장이라기보다는 자식 같다는 말이 더 어울리죠.4개월만 일하기로 했는데 어느 새 30년을 함께했습니다."
이승걸 그랜드 하얏트호텔 공사실 이사(50)는 호텔을 자식 돌보듯 '키웠다'고 표현했다.
이 이사는 서울 남산의 하얏트호텔이 개관한 1978년 7월1일부터 만 30년을 근무한 호텔의 '산 증인'이자 400여 차례 공사를 통해 지금의 호텔 건물을 '빚어 낸' 장인이다.
하얏트호텔의 클럽 JJ마호니스에서 만난 이 이사는 개관일을 떠올렸다.
"처음 호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국내에선 최초로 외관을 유리로 감싸 사람들이 '남산 유리집'이라고 불렀죠.지금 호텔은 네 번의 전체 리노베이션을 거친 모습이고,지금까지 공사에 쏟아부은 돈을 따져 보니 2000억원이 넘더군요."
'아직도 평균 퇴근 시간이 밤 11시'라고 할 정도로 호텔에 친자식 이상의 애정을 쏟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호텔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에너지 기사 1급 자격증이 있어 대학 재학 중 호텔 엔지니어시설부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고향(경북 의성)에 계신 부모님이 '멀쩡히 대학 다니는 남자가 왜 호텔에서 일하느냐'며 반대하셨죠.결국 다른 기사를 찾을 동안인 넉 달만 일한다는 조건으로 출근했죠."
그러나 호텔 측의 설득에 그는 결국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1984년에 공사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일이자 취미일 정도로 즐거웠어요.
그 재미에 빠져 살다 보니 30년이 훌쩍 지났죠."
이어 그는 하얏트의 각종 일화 보따리들을 막힘 없이 풀어 놨다.
"호텔 이미지를 고려해 1987년 '카프리스 나이트'를 내보내고 30대 여성을 겨냥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6월 개장 한 달 전까지 이름을 짓지 못했어요.
고민하던 중 당시 식음료 부문 이사였던 데이비드 유델(현 글로벌하얏트 아시아퍼시픽 부사장)이 좋아하던 노래 'J에게'(가수 이선희)를 떠올려 'J'를 제안,'JJ마호니스'가 탄생했습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일로 1993년 7월 지하 보일러 폭발 사고를 꼽았다.
"호텔이 발칵 뒤집혔죠.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주일 뒤 방한해 우리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는데 테러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물론 단순 사고였지만,석 달간 보수하고 다시 문을 열 땐 로비에 불의 기운을 억제하는 폭포 그림들을 걸어 놨습니다.
아직도 걸려 있죠." 폭발 사건으로 다른 호텔로 숙소를 바꿨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8년에 다시 와 투숙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2세,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최근 방한한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까지 수많은 국빈 및 유명 인사들이 하얏트에서 묵었다.
가장 애착을 갖는 곳을 물었더니 그는 뜻밖에도 '나무'를 꼽았다.
"조경 사업을 할 때 심은 나무를 비롯해 야외 수영장 주변 나무 등 350그루를 직접 고르고 심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녔죠.경북 김천에 갔을 땐 동네 사람들이 반대해 하룻밤 자면서 함께 막걸리 마시고 노인정 짓는 데 기부까지 하면서 설득했죠.나무마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두 기억합니다."
이처럼 호텔 구석구석 내ㆍ외부를 30년간 보살핀 이 이사는 지금 또 다른 30년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 3월까지 객실 4개 층을 보수하면 네 번째 호텔 리노베이션이 끝납니다.
앞으로는 에너지 절약형 기기,이산화탄소를 절감할 수 있는 시설들로 교체해 '친환경 호텔'을 만들 겁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이승걸 그랜드 하얏트호텔 공사실 이사(50)는 호텔을 자식 돌보듯 '키웠다'고 표현했다.
이 이사는 서울 남산의 하얏트호텔이 개관한 1978년 7월1일부터 만 30년을 근무한 호텔의 '산 증인'이자 400여 차례 공사를 통해 지금의 호텔 건물을 '빚어 낸' 장인이다.
하얏트호텔의 클럽 JJ마호니스에서 만난 이 이사는 개관일을 떠올렸다.
"처음 호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국내에선 최초로 외관을 유리로 감싸 사람들이 '남산 유리집'이라고 불렀죠.지금 호텔은 네 번의 전체 리노베이션을 거친 모습이고,지금까지 공사에 쏟아부은 돈을 따져 보니 2000억원이 넘더군요."
'아직도 평균 퇴근 시간이 밤 11시'라고 할 정도로 호텔에 친자식 이상의 애정을 쏟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호텔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에너지 기사 1급 자격증이 있어 대학 재학 중 호텔 엔지니어시설부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고향(경북 의성)에 계신 부모님이 '멀쩡히 대학 다니는 남자가 왜 호텔에서 일하느냐'며 반대하셨죠.결국 다른 기사를 찾을 동안인 넉 달만 일한다는 조건으로 출근했죠."
그러나 호텔 측의 설득에 그는 결국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1984년에 공사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일이자 취미일 정도로 즐거웠어요.
그 재미에 빠져 살다 보니 30년이 훌쩍 지났죠."
이어 그는 하얏트의 각종 일화 보따리들을 막힘 없이 풀어 놨다.
"호텔 이미지를 고려해 1987년 '카프리스 나이트'를 내보내고 30대 여성을 겨냥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6월 개장 한 달 전까지 이름을 짓지 못했어요.
고민하던 중 당시 식음료 부문 이사였던 데이비드 유델(현 글로벌하얏트 아시아퍼시픽 부사장)이 좋아하던 노래 'J에게'(가수 이선희)를 떠올려 'J'를 제안,'JJ마호니스'가 탄생했습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일로 1993년 7월 지하 보일러 폭발 사고를 꼽았다.
"호텔이 발칵 뒤집혔죠.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주일 뒤 방한해 우리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는데 테러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물론 단순 사고였지만,석 달간 보수하고 다시 문을 열 땐 로비에 불의 기운을 억제하는 폭포 그림들을 걸어 놨습니다.
아직도 걸려 있죠." 폭발 사건으로 다른 호텔로 숙소를 바꿨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8년에 다시 와 투숙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2세,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최근 방한한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까지 수많은 국빈 및 유명 인사들이 하얏트에서 묵었다.
가장 애착을 갖는 곳을 물었더니 그는 뜻밖에도 '나무'를 꼽았다.
"조경 사업을 할 때 심은 나무를 비롯해 야외 수영장 주변 나무 등 350그루를 직접 고르고 심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녔죠.경북 김천에 갔을 땐 동네 사람들이 반대해 하룻밤 자면서 함께 막걸리 마시고 노인정 짓는 데 기부까지 하면서 설득했죠.나무마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두 기억합니다."
이처럼 호텔 구석구석 내ㆍ외부를 30년간 보살핀 이 이사는 지금 또 다른 30년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 3월까지 객실 4개 층을 보수하면 네 번째 호텔 리노베이션이 끝납니다.
앞으로는 에너지 절약형 기기,이산화탄소를 절감할 수 있는 시설들로 교체해 '친환경 호텔'을 만들 겁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