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죠.의사와 약사들이 벌이는 '밥그릇 싸움'에 제약사가 희생양이 된 겁니다."

지난 28일 오후 4시.A제약사 직원은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들어서며 이렇게 토로했다.

의협은 2006년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복제약이 오리지널과 동등하게 인체에 작용하는지 파악하는 시험) 조작' 사건 당시 자료 부족으로 조작 여부를 입증할 수 없었던 576개 복제약 명단을 이날 공개했다.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은 '안전성 및 유효성을 다시 검증받아야 하는 약품'이란 의미.한미약품(31개) 신풍제약(21개) 등 명단에 나온 93개 국내 제약사 입장에선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약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약품들은 '생동성 조작'과 상관없이 시판 허가를 받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검증을 받은 데다 당시에는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조차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이들 의약품은 작년부터 시작된 식약청의 재검증에서 속속 합격 판정을 받고 있다.

의협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명단에 오른 약품의 90% 이상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김주경 대변인)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명단을 공개했다면 '만에 하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들 약품에 대한 처방을 자제토록 회원 의사들에게 권고하는 게 순리일 터.하지만 의협은 "그럴 계획은 없다"고 잘라말한다.

문제 없는 의약품을 만든 제약사가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란다.

그렇다면 속사정은 무엇일까.

답은 발표 직후 이어진 '성분명 처방 반대' 토론회에서 드러났다.

의사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성분명 처방' 정책에 대해 "생동성 시험의 신뢰성이 이 모양인데도 정부와 약사들은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약은 동등한 효능을 인정받은 만큼 성분명 처방을 해도 된다'고 주장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B제약사 임원은 "성분명 처방이 실시된다면 의사는 처방전에 약의 성분명만 쓸 수 있어 해당 성분을 함유한 특정 약을 선택하는 권한은 결국 약사에게 넘어간다"며 "의사들이 처방권을 고수하기 위해 제약사들을 제물로 삼은 느낌"이라고 씁쓸해했다.

오상헌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