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안정으로 바꾼 뒤 대규모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는 등 필사적으로 환율 상승 억제에 매달리고 있지만 '약발'이 좀처럼 먹히질 않고 있다.

오름세를 탄 원·달러 환율이 정부의 달러 매도 개입 때나 잠시 주춤할 뿐 개입이 사라지면 곧바로 튀어오르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자칫하면 환율도 못잡고,외환보유액만 까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달 새 70억달러 이상 매도

29일 외환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한 달간 환율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쏟아부은 자금은 7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난 5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2582억달러)의 약 3%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달 27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50원대를 돌파하면서 본격화된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 개입은 6월 들어 1030~1040원대에서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과 16일 하루 3억~5억달러 수준이던 달러 매도금액이 이후에는 하루에 10억~15억달러로 불어나는 등 매도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달러 매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국제 유가 등 원자재값 상승으로 물가가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환율상승 저지 '약발 안받네'
물가를 잡아야 하지만 경기 하강 때문에 금리 인상 같은 통화정책이 힘든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환율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눌러도 튀어오른다

그러나 당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 달 전 1030원대이던 환율이 지금은 1040원대로 올라섰다.특히 지난 27일에는 정부가 15억달러가량의 자금을 쏟아부었음에도 환율은 오히려 5원 가까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외환시장의 수급여건상 환율 상승 요인이 우세하다고 지적한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기조와 외국인 주식매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달러 수요는 느는데(유가 상승,외국인 주식매도) 공급은 감소(경상수지 적자)하고 있는 것이다.이탁구 KB선물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심리가 롱(달러 매수 우위)으로 돌아섰다"며 "당국의 대규모 개입 때 곧바로 '반발 매수세'가 형성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외환시장 관계자는 "외환당국이 환율을 특정 레벨로 묶어두려고 하면 시장에선 반드시 이를 깨려는 세력이 등장하기 마련"이라며 "한번 저항선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달러 매도가 자칫하면 환율은 안정시키지 못한 채 외환보유액만 축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줄어드는 외환보유액

외환보유액은 이미 감소세다.

지난 5월 말 외환보유액은 3월 말에 비해 60억달러 감소했다.

최근 정부의 달러 매도 개입을 감안하면 6월 외환보유액은 더 줄었을 게 뻔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세계 6위 수준으로 당장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상황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단기외채 비중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마냥 안심할 수도 없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최근 한국 등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과도한 시장개입에 나설 경우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환율이 급변할 때 미세개입은 필요하지만 단기외채 비중이 높아진 점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을 자주 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