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에게 '스타'라는 호칭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말을 좇다보면 제자는 콩쿠르 우승에 집착하게 되고 스승은 그런 제자를 '생산'해내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사제지간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6)와 김선욱씨(20)는 정상급 음악가이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김선욱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기 전인 11살 때부터 김 교수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김선욱씨는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지난 2월 계약해 세계 무대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스승을 찾아 수업을 받는다.

김 교수도 '제2의 김선욱'이 없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결과만 놓고 가르치게 되면 선생이 먼저 아이를 포기하게 된다"며 스스로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30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있는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두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둘은 오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수원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서 지휘자와 협연자로 한 무대에 선다.

지난 5월 수원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김 교수가 제자를 부른 것.

김선욱에게는 스승의 품을 떠나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무대이고, 김 교수로서는 지휘자의 면모를 보여줄 시작점이다.

원래 군살이 별로 없는 김 교수이지만 이날은 유난히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교육자, 연주자,실내악단 금호아트홀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음악감독,음악해설가에 수원시향 지휘자까지 맡으면서 밥 먹을 시간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일 욕심이 많냐는 질문에 그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또 "대지휘자가 될 생각도 없고 수원시향에서 그런 취지로 날 부른 것도 아닐 것"이라며 "다만 지금까지 내가 보여왔던 기획력을 가지고 수원 시민들이 클래식 공연을 보러 서울까지 갈 필요 없게 만든다는 수원시의 목표와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내 취지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답했다.

김선욱씨는 "선생님께 배운 음악인으로서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영국에 가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 8월에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프랑스 쿠쉐벨 음악캠프에 연주자가 아닌 학생 자격으로 신청서를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스승에게 배우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워낙 엄한 스승인 데다 잘못을 지적할 때는 눈물이 쏙 빠지게 한다.

2006년 동양인 최초로 리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도 "콩쿠르는 대회 당시의 상대적인 실력 평가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제자가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혹독한 가르침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그의 열정이 크기 때문에 지금의 김선욱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가르치고 아는 학생 중에서 선욱이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못봤어요. 싫은 소리를 듣고 자존심이 상해도 그것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이번 음악회에서 김 교수는 그리그의 모음곡 1번 '페르귄트'와 스트라빈스키의 무용 모음곡 '페트루시카' 등을 선사한다.

김선욱과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를 협연한다.

둘은 내년 5월 수원시향의 베토벤 협주곡 전곡 시리즈로 다시 만날 예정이다.

(031)228-2813

글=박신영/사진=김영우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