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멀리스 노벨경제학상 수상ㆍ英케임브리지대 교수

"세금 때문에 집을 사고 팔지 못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조세분야의 대가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멀리스 케임브리지대 교수(72)와 그의 제자인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55ㆍ한양대 교수)이 지난 27일 한양대 경제금융관에서 만나 조세 문제를 비롯해 한국 경제의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담을 가졌다.

두 학자는 "부동산 시장은 기본적으로 시장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멀리스 교수는 한국경제신문사 서울대 한양대 등의 공동주최로 지난 27~29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공공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PET Seoul 2008)' 참석차 방한했다.

△나성린 의원=한국에서 부동산 세금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집값 안정을 위해 보유세나 양도세를 높이는 정책은 효과가 있을까요.

△제임스 멀리스 교수=세금이 늘면 이론상 집값이 내릴 가능성이 높지요.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주택소유자는 양도세가 무서워 집 팔기를 꺼리고,수요자는 보유세 부담이나 금융규제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워 사고 싶은 집을 못 살 수도 있질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부동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 의원=지금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꼭 그런 상황입니다.

외견상 시장이 안정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래가 안 되고 있지요.

또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은 세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초과 수요가 여전해 집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은 기본적으로 주택공급을 늘려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멀리스 교수=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세금을 올려 집값을 잡겠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질 않습니까.

△나 의원=상속세 문제는 어떤지요.

요즘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던데….

△멀리스 교수=상속세를 없앤 나라가 상당히 많습니다.

호주 홍콩 스웨덴 등이 대표적이지요.

특히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스웨덴이 상속세를 폐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상속세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일각에서 말하는 이른바 '부의 재분배' 기능이 크지 않습니다.

상속세가 사라지면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상속받는 사람의 재산에 따라 차등과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속인 가운데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게 똑같은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공평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 의원=국가 간 법인세 인하 경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멀리스 교수=법인세 인하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아일랜드입니다.

아일랜드는 40% 이상이던 법인세율을 12.5%로 대폭 낮춤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자본을 유치하고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요.

하지만 법인세를 내린다고 꼭 일자리나 투자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 영국은 법인세가 낮지만 실업률이 높질 않습니까.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다른 나라보다 법인세를 높게 유지하기는 힘들지만 정부 입장에선 법인세를 인하하면 정말 일자리나 투자가 늘어날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규제 완화 등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지요.

△나 의원=세금 감면 문제도 관심인데요.

감세를 하면 반드시 경제성장률이 높아질까요.

△멀리스 교수=일시적으론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좀 더 실증분석이 필요합니다.

또 지나친 감세로 정부 재원이 급감하면 정부 지출에 주로 의존하는 사회안전망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나 의원=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고물가와 저성장이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멀리스 교수=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경제의 공급능력과 생산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시켜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원자재값 상승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금융시장에 투자됐던 돈이 투기자금화하면서 석유시장이나 상품시장에 흘러든 탓이 큽니다.

이런 현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고물가로 인해 수요가 감소하면 유가 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지금 상황에선 지나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재정정책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 의원=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현재 선진국 도약을 시대적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요.

△멀리스 교수=한국처럼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사람에 의존하는 경제에선 인력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교육제도를 강화해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정부 역할을 줄이고 시장기능을 강화해 경제시스템을 '중진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바꿔야 하지요.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산업을 갖고 있질 않습니까.

그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신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합니다.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 멀리스 교수는 >

수리경제학을 전공한 조세이론의 권위자이다.

어떻게 하면 공평하면서도 효율적인 조세 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연구한 '최적 조세이론'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세금을 어떻게 물려야 가난한 사람이 분발하고 부자도 비교적 불만 없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를 분석한 것이다.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199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936년 영국 스코틀랜드 태생 △1957년 에든버러대 수학석사 △1963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1966~68년 파키스탄 경제개발연구소 자문관 △1969~95년 옥스퍼드대 교수 △1995~현재 케임브리지대 교수 △199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1997년 경(Sir) 작위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