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다가서고 있다.

한국은행이 1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은 우리 경제가 향후 `저성장, 고물가'로 추락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고유가에 발목이 잡혀 하반기 성장률은 3%대로 주저앉고, 물가는 5%대로 치솟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연간 전체로는 4.6% 성장해 애초 한은의 예상(4.7%)보다 소폭 하락한 수준이지만 성장률이 상반기 5.4%에서 하반기에 3.9%으로 큰 폭 추락할 것으로 예측돼 실물경기가 급속히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5%대의 높은 물가 속에 민간소비.고용.경상수지 등 각종 경제지표 전망도 온통 잿빛이어서 서민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 고유가에 성장.물가 발목

하반기 성장률이 3.9%로 후퇴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에 이를 것이라고 한은이 전망을 수정한 이유는 고유가와 세계경제 성장률 둔화 등 국내외 여건이 악화된데 따른 것이다.

성장률이 상반기 4.9%에서 하반기 4.4%가 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의 전제가 되는 주요 지표들이 예상에서 속속 빗나갔기 때문이다.

원유도입단가의 경우 배럴당 81달러로 봤으나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배럴당 115달러로 수정했고 세계경제성장률도 4.6%에서 3.8%로 낮춰 잡았다.

한은은 국제유가의 경우 하반기에도 수급 사정이 쉽게 개선되기 어렵고 원유시장으로의 자금 유입도 꾸준히 늘어나면서 높은 수준을 지속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제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까지 가세하면서 소비자물가는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인 3.5%를 훌쩍 뛰어넘어 5%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의 경우 당초 전망보다 3배나 불어난 90억달러로 수정됐다.

경상수지는 환란 이후 1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왔으나 이번에 적자로 돌아선다는 것은 적자 규모를 떠나 경제전반에 심리적으로 적잖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김재천 한은 조사국장은 "우리 경제가 `고물가, 저성장'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이 1조 달러 규모라면 9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는 1% 안쪽이어서 국제기준으로 보면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수출 호조-내수 부진 양극화 지속

하반기에도 수출이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가운데 내수는 침체하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은은 수출증가율이 상반기 11.6%에서 8.2%로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수출호조는 브릭스나 산유국 등 신흥시장국의 고성장이 선진국 경기 둔화를 어느 정도 상쇄해줄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올들어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 따라 자원부국이 많은 중동.중남미로의 수출이 크게 늘면서 대미(對美) 수출액을 추월하기도 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여파로 미국 경제가 부진해지면서 대미 수출은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중동.중남미 지역은 자원 수출을 토대로 경제개발에 나서면서 개발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내수를 보면 민간소비의 경우 고유가로 실질구매력이 저하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가계채무부담이 늘면서 하반기에도 2.7%의 낮은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상반기 1.7%에서 하반기 7.3%로 높아지겠지만 이는 작년 하반기에 설비투자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로, 실제로는 기업 채산성 악화와 기업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 저성장 고착화하나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5∼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연 4.6%의 성장률은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3%대에 머물고 미국, 유로, 일본 등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 경제도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4%대 중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선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 전망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편인 한은의 전망은 KDI(4.8%), 현대경제연구원(4.9%) 삼성경제연구소(4.7%), LG경제연구소(4.6%) 등 다른 국책 또는 민간 연구소들보다는 다소 낮거나 비슷하지만 OECD(4.3%), IMF(4.1%)의 예측치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우리 경제는 2002년 신용카드 남발에 의한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성장률이 7.0%를 기록한 후 2003년에는 3.1%로 곤두박질쳤다.

2004년 4.7%로 나아진 후 2005년에는 4.2%로 둔화했으며 2006년과 2007년은 2년 연속 5.0%를 나타냈다.

문제는 성장률 둔화 속도다.

상반기 5%대 성장에서 3%대로 급락하면서 서민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욱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은의 김재천 국장도 "연간 성장률로 봐서 4.6%는 그리 걱정할 수치는 아니지만 성장률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갈수록 위축되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갓 넘은 우리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 발을 대기도 전에 5% 미만의 성장률이 고착화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출 호조로 성장률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 경제의 활력은 점차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저성장 추세를 개선하려면 성장률이 현저하게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 통화정책 변화 있을까

하반기 경제 지표 가운데 눈에 띄게 불안한 부분은 물가 상승률이다.

한은은 물가 상승률이 상반기 4.3%에서 하반기 5.2%로 높아지고 연간으로는 4.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한은의 물가관리 목표 3.5%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이에따라 `물가 안정'을 정책의 주된 목표로 잡고 있는 한은이 선제적 금리 인상에 나설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은이 고물가와 함께 저성장 우려를 동시에 내놓은 점에 주목하면서 당분간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하는 분위기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반기 소비자물가가 5%를 넘는다면 당연히 금리인상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 점도 함께 봐야 한다"며 "금리인상 또는 금리인하를 암시한다기 보다는 물가불안을 더 신경 써서 주시하겠다는 정도의 의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허 연구위원도 "한은이 유가가 높은 상황이지만 실물경제는 그럭저럭 괜찮은 것으로 평가했다"며 "다만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공격적인 금리정책을 취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이준서 기자 fusionjc@yna.co.kr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