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일괄사표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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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 인사들을 모두 내보내고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집권하자마자 공직 전반에 걸쳐 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밀어붙였다.
정부부처,공기업,정부 산하 기관장뿐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장에게까지도 일괄사표 제출을 종용했다.
사표제출을 거부하며 버티다 기관존폐가 걸린 구조조정 압력에 못 이겨 손을 들고 만 한 기관장은 '일신상의 사정'이란 말은 도저히 쓸 수가 없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표를 냈다고 실토한다.
웃지 못할,기막힌 얘기다.
정부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광우병ㆍ쇠고기 파동으로 급기야 청와대 수석비서진과 내각이 일괄사의를 표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억해 보면 일괄사표의 관행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가 고위공직자들로부터 일괄사표를 받는 일은 이미 한국 행정문화의 보편적 관행처럼 돼버렸다.
'숙청 쓰나미'니 초법적ㆍ독재적 발상이니 하면서 맹렬히 비판한 야당도 그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스템 인사를 강조해 마지않던 노무현 정부 때도 중앙부처 1급들의 일괄사표 파문 등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경우 유독 노골적이고 무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물갈이와 새판 짜기를 새 정부의 최우선적 정지작업처럼 간주해 온 한국적 정치 비결(recipe)이 깔려 있다.
판갈이를 위해서 일괄사표만큼 효과적인 방식은 없다.
구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알아서 기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까닭에 통째로,체계적으로 구정권의 인사들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들을 앉힐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일괄사표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쓸모만 많은 것일까.
나라 전체의 시각에서 생각해 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괄사표의 관행은 논공행상이나 정실인사의 폐단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공직인사제도를 무력화시킨다.
정무직과는 달리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정부출연 연구기관에 공모제나 외부추천제,임기제 등 인사공정성을 위한 절차를 보장한 건 그 임무의 성격상 자율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법정신이 구현된 결과다.
그런 기관들의 장에게 정권이 바뀌었다며 일괄사표를 받는다면 이는 관련법령을 직ㆍ간접으로 위배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나 해당기관,나아가서는 공직사회 전반에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시그널을 준다.결국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만이 등용되게 마련이고 인사공정성 제도들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념만 강화된다.
일괄사표 후 새 인사를 하더라도 기존의 공모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데,그 공정성이나 객관성에 대한 신뢰저하는 막을 길이 없다.
뭐니뭐니 해도 일괄사표가 가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특성상 자율성 보장이 필요한 공공부문의 신뢰인프라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데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1999년 과거의 정부직할체제로부터 연구회제체로 전환한 것은 국책연구기관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연구기관장들의 일괄사표를 받고 또 그 인사권자인 이사장까지도 사표를 받아 정부출범 후 벌써 수개월이 지나도록 후속인사를 위한 절차로 귀중한 시간을 허송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어렵고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쩌면 아주 간단명료한 해법이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자율성 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영역에 속하는 공공기관들은 정치적 전리품 목록에서 아예 제외시키고 인사공정성 인프라를 확실히 보장해 주겠다는 정권 차원에서의 결단이 필요하다.
임기를 지키고 공모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 인사들을 모두 내보내고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집권하자마자 공직 전반에 걸쳐 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밀어붙였다.
정부부처,공기업,정부 산하 기관장뿐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장에게까지도 일괄사표 제출을 종용했다.
사표제출을 거부하며 버티다 기관존폐가 걸린 구조조정 압력에 못 이겨 손을 들고 만 한 기관장은 '일신상의 사정'이란 말은 도저히 쓸 수가 없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표를 냈다고 실토한다.
웃지 못할,기막힌 얘기다.
정부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광우병ㆍ쇠고기 파동으로 급기야 청와대 수석비서진과 내각이 일괄사의를 표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억해 보면 일괄사표의 관행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가 고위공직자들로부터 일괄사표를 받는 일은 이미 한국 행정문화의 보편적 관행처럼 돼버렸다.
'숙청 쓰나미'니 초법적ㆍ독재적 발상이니 하면서 맹렬히 비판한 야당도 그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스템 인사를 강조해 마지않던 노무현 정부 때도 중앙부처 1급들의 일괄사표 파문 등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경우 유독 노골적이고 무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물갈이와 새판 짜기를 새 정부의 최우선적 정지작업처럼 간주해 온 한국적 정치 비결(recipe)이 깔려 있다.
판갈이를 위해서 일괄사표만큼 효과적인 방식은 없다.
구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알아서 기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까닭에 통째로,체계적으로 구정권의 인사들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들을 앉힐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일괄사표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쓸모만 많은 것일까.
나라 전체의 시각에서 생각해 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괄사표의 관행은 논공행상이나 정실인사의 폐단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공직인사제도를 무력화시킨다.
정무직과는 달리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정부출연 연구기관에 공모제나 외부추천제,임기제 등 인사공정성을 위한 절차를 보장한 건 그 임무의 성격상 자율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법정신이 구현된 결과다.
그런 기관들의 장에게 정권이 바뀌었다며 일괄사표를 받는다면 이는 관련법령을 직ㆍ간접으로 위배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나 해당기관,나아가서는 공직사회 전반에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시그널을 준다.결국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만이 등용되게 마련이고 인사공정성 제도들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념만 강화된다.
일괄사표 후 새 인사를 하더라도 기존의 공모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데,그 공정성이나 객관성에 대한 신뢰저하는 막을 길이 없다.
뭐니뭐니 해도 일괄사표가 가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특성상 자율성 보장이 필요한 공공부문의 신뢰인프라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데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1999년 과거의 정부직할체제로부터 연구회제체로 전환한 것은 국책연구기관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연구기관장들의 일괄사표를 받고 또 그 인사권자인 이사장까지도 사표를 받아 정부출범 후 벌써 수개월이 지나도록 후속인사를 위한 절차로 귀중한 시간을 허송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어렵고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쩌면 아주 간단명료한 해법이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자율성 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영역에 속하는 공공기관들은 정치적 전리품 목록에서 아예 제외시키고 인사공정성 인프라를 확실히 보장해 주겠다는 정권 차원에서의 결단이 필요하다.
임기를 지키고 공모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