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촛불시위로 매출액 50% 급감
베이징올림픽·휴가철 맞물려 위기감 고조

"지난주부터 출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더 이상 돈을 빌릴 데도 없고,책은 안 팔리고,어렵사리 낸 책도 돌아서기가 무섭게 반품돼 옵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해요."

창업 5년차 출판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그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출판계뿐만 아니라 서점·인쇄업계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출판사들의 매출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제작비 축소 등의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부도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올 들어 종이값이 20%까지 뛰는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환율 상승에 따른 로열티 급증 등 원가 상승 요인이 한꺼번에 겹친 데다 촛불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출판산업 전체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몇몇 출판사는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라는 '괴담'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다음달 시작되는 베이징올림픽과 여름휴가,추석연휴까지 이어져 출판계의 불황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견출판사인 H사는 지난달 기존 인력의 55%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단행본 출판사의 선두 그룹인 K사도 10여명을 줄였다.

한 출판사는 연봉 액수가 많은 순서로 인력을 축소했다.

심지어 출장 중인 간부 사원에게 해고 통지를 한 곳도 있다.

여기에 일부 네티즌들의 불매운동까지 겹쳐 출판사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보수 신문에 신간 광고를 낸 출판사의 홈페이지에 '광고주 불매' 위협이 날아든 것.새 책을 찍어도 신간 홍보를 제대로 할 수 없고,그 때문에 책이 더욱 안 팔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인쇄·제본소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

신간 생산량이 줄어 윤전기 가동률이 30~40% 정도로 떨어졌다.

고유가 파고에 원가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평소 교대 근무제로 24시간 가동하던 것에 비하면 가만히 앉아서 손실을 떠안고 있다.

이에 따라 양장본 제작 기간이 종전의 열흘에서 사흘 이내로 당겨졌고 제본에 소요되는 시간도 짧아졌다.

그만큼 일감이 줄었다는 얘기다.

서점들의 고통지수 또한 커지고 있다.

출판사 영업자들에 따르면, 교보문고의 경우 광화문점은 촛불집회의 여파로 매출이 50%나 줄었다.

전국 지점을 다 합쳐도 30%가량 감소했다.

세종로 인근의 영풍문고와 반디앤루니스 종로점도 울상을 짓기는 마찬가지.시위대가 연일 거리를 휩쓰는 바람에 책을 구입하려는 독자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이들 서점도 네티즌들의 항의 방문과 인터넷 불매운동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부 극성파가 '보수 신문에 신간 광고를 낸 출판사들의 책을 진열하지도 말고 팔지도 말라'고 위협하고 있는 것.대형 서점뿐만 아니라 중소형 서점들도 반품 주기를 평소의 3~6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거나 대금 결제를 미루고 있다.

독자들의 수요 위축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주요 독자층이 거리로 나서고,인터넷 서점보다 다음 '아고라'에 몰려가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요인 외에 출판계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거대 자본이 출판계에 유입되면서 출판시장이 양극화되고 '승자독식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저작권료부터 마케팅까지 자본의 싹쓸이 현상이 심화되고 콘텐츠 경쟁력은 약화돼 불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지식노마드 출판사의 김중현 대표는 "출판 불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면서 "외형경쟁 등 출판계의 구조적인 왜곡 현상을 개선하고 자생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