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소설가>

최종 목표가 정권퇴진이라면 사태는 심각하다.

시작도 제대로 못해 본 새 정부가 순순히 물러날 리도 없지만 그 뜻을 관철시키려면 결국엔 국민 모두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국가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대안(代案)도 없고,대안(對案) 세력도 눈에 띄지 않는다.민주사회에서 민심은 곧 천심이어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있다지만 아직 거기까지 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종 목표가 정권퇴진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한다.

그만두고 새 정부에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아무리 민심이 천심이라고 해도,상대가 있는 통상분야에서 무턱대고 재협상만을 고집하는 것도 무리이긴 하다.

국민이 직접 뽑은 정권의 결정에는 국민 또한 일정부분 책임이 있고,그걸 민의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 나라의 격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당하는 불이익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는다.

장차 있을지도 모를 일 때문에 반드시 있을 일이나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아직은 가정(假定)에 불과한 광우병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현실이다.

두 달이 넘도록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갖가지 파행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암울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가뜩이나 폭등한 유가 때문에 지구 전체가 비상국면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국민이 아무리 똘똘 뭉쳐도 과연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모순이고 역설이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촛불이 더 쉽게 꺼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넘어야 할 산과 벽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니 쇠고기 협상 하나 제대로 못한 이 정부의 자질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불안감이 암암리에 확산,증폭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부가 나서서 어려움을 하소연할수록 오히려 국민의 불신과 반감이 커지는 것이리라.

요즘 유행가 수명은 길어야 보름이라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빨리 돌아간다는 뜻이다.일을 이렇게 만든 건 인터넷과 휴대폰이다.

오늘 저녁 한 유명인사의 은밀한 행동이 휴대폰 카메라에 찍혀 내일 아침이면 인터넷을 타고 전국,아니 세계 도처에 뿌려지는 게 현실이다.

이 속도를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방면에서든 현실감각을 지니기 어렵다.

세상과 민심은 시속 100㎞인데 정부의 대응속도가 절반에도 못 미치니 늘 끌려 다니거나 기회를 잃고 뒷북만 치는 격이다.

정부에 강조하거니와 시간이 없다.더 이상 미적거리다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허물 자체보다는 허물임을 알았을 때 대처하고 고치는 속도가 중요하다.

승복하고 순응하려면 깨끗이 그리고 재빨리 해야한다.

촛불의 배후와 폭력의 선후를 끊임없이 입에 올리는 자들,성난 민심 앞에 거만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다 붙잡아들이겠다는 태도로는 결코 이 난국을 끝장낼 수 없다.

시국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리고 겪어봐서 알겠지만 민심이란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그다지 이성적이지도,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은 법이다.

이쯤 되면 비단 쇠고기 때문만이 아님을 정부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서 성난 민심을 가라앉힐 확실한 동기와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대외적으로 재협상이 어렵다면 대통령을 빼고 모조리 다 바꾼다는 대국적이고 구국적인 결단이 절실하다.

시기를 더 넘기면 그마저도 해법이 안 될 수 있다.

이 장맛비에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그래서 민심이 정권퇴진을 겨냥하는 최악의 순간이 온다면 정부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 모두의 불행이 되고 만다.

적어도 그런 사태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