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무명의 광고 디자이너 하비 볼이 미소 띤 표정의 '스마일리 페이스'를 창안했다.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생명보험사에 합병된 회사 고용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고 동그란 배지'를 창안하고 그가 받은 커미션은 불과 45달러였다.

그는 상표나 저작권 중 아무것도 등록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그것은 '아주 애석한' 일이었다.

그의 스마일리 배지를 구입한 사람은 1971년 한 해에만 5000만 명이나 됐다.

이후 지구촌 전역에서 티셔츠와 문구,열쇠고리,자동차 범퍼 등의 이미지로 퍼져나갔다.

스마일리 페이스는 행복에 관한 인간의 의지를 반영한다.

특히 이 상징을 광고인이 창안해냈다는 게 중요하다.

광고가 꿈을 파는 비즈니스라면 그 꿈이 모든 영역에서 행복이라는 주제를 변주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세기 이후 물질적인 풍요와 인간의 평균수명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예전에 비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행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이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1950년부터 미국에서 진행돼온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숫자는 60%에 머물고 있고 아주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7.5%에서 6%로 떨어졌다.

우울증은 크게 늘었다.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인 역사학자 맥마흔은 <행복의 역사>에서 이 같은 장면들을 비추며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2000여년의 인류사 전체를 관통한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21세기 첨단 유전공학 시대까지를 통시적으로 훑으면서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을 '행복'이라는 코드로 재조명한 것.

그에 따르면 고대인들에게 행복은 '운명'과 동의어였다.

행복이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이를 통제할 능력은 인간에게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스 비극 속의 주인공들이 운명의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도 이 같은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 인도ㆍ유럽계 언어의 '행복'은 운,행운,운명이란 말의 어원과 같다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행복한 삶이란 신성에 준하며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에게 행복이란 풍요와 번영을 상징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행복이 신과 같은 말이었다.

현대적인 행복의 개념은 계몽사상기인 17~18세기에 탄생했다.

그것은 레크리에이션과 사치품,패션 등으로 상징됐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안느 로베르 자크 튀르고의 말처럼 상업 사회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사고팔았던" 것이다.

이는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으로 연계된다.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 선언서를 기초하면서 행복추구권은 '자명한 진실'이라고 했고,1789년 인권선언을 했던 프랑스인들도 선언문의 서문 마지막 줄에 '모든 이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명시했다.

20세기 말에 와서는 유전자를 통해 행복을 해부하는 연구까지 등장했다.

'1996년,행동 유전학자 데이비드 리켄과 아우케 텔레겐은 수십 년간 축적된 데이터에서 일란성과 이란성 쌍둥이 3000명의 기분,행동,성격 특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일란성 쌍둥이들의 경우 같이 자랐건 아니면 태어나면서 헤어졌든 간에 그들의 기분이나 주관적 행복이 매우 유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달랐다.

이는 행복에 환경보다 유전자가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인간의 DNA 속에서 '행복의 실체'를 찾고자 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행복을 증진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지만,아직은 연구단계에 불과하다.

이 책에 제시된 많은 예증 가운데 가장 역설적인 것은 1691년 피에르 다니엘 위에 주교가 지구상의 파라다이스는 오늘날의 이라크 부근이라고 말한 점.인류 행복의 원천이었던 지역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바라보면 "행복은 아직도 마법에 빠진 채 초월성의 매력과 신성을 품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700쪽이 넘는 이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모든 여정이 끝난 뒤,도착보다 여로가 더 나았다는 걸 깨닫는 돈키호테'를 상기시키면서 북유럽 국가의 국민행복지수가 미국 일본 독일보다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대한민국 행복지수(안치용 지음,북스코프)=한국인의 행복지속가능지수 조사 보고서.1만2000여명의 설문조사를 통해 남녀ㆍ연령ㆍ소득ㆍ업무ㆍ직업별 행복의 요건과 사회적 변수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

◇센코노믹스-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아마티아 센 지음,원용찬 옮김,갈라파고스)=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경제학자의 역저.그는 숫자 중심의 실증적 경제학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하는 휴먼 경제학 이야기를 들려준다.